미국 증시가 폭락하고 유럽과 아시아의 주가도 일제히 하락하면서 2차 금융위기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경제 회생의 기대를 안고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출범했는데도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휘청거리면서 다시 금융시장에 불안이 엄습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가운데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놓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0.7%로 내려잡았고 국세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아예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증시 다시 불안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20일(현지시간) 금융시장의 성적표는 참담했다. 뉴욕증시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전 거래일보다 332.13포인트(4.01%) 떨어진 7,949.09로 마감, 작년 11월 20일 이후 두 달 만에 8,000선 밑으로 내려앉았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88.47포인트(5.79%) 하락한 1,440.86으로 거래를 마쳤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의 FTSE 100지수는 0.42% 떨어진 4,091.40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의 DAX지수는 1.77% 하락한 4,239.85, 파리 증권거래소의 CAC 지수는 2.15% 급락한 2,925.28로 장을 마쳤다.
이런 급락세는 미국 금융기관의 대형 부실이 잇따라 드러난 탓이다. 진앙은 씨티그룹이었다. 씨티그룹이 지난해 4분기에 82억9천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는 실적이 발표되자 세계 각국에서 제2의 금융쇼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4분기에 18억 달러의 손실을 낸 것도 악재였다.
특히 유럽 금융사들의 실적 악화는 금융불안이 유럽의 금융기관으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우려와 불안감을 키웠다.
한국 등 아시아 시장도 이런 영향을 비켜가지 못했다. 일본의 닛케이평균주가는 21일 전날보다 164.15포인트(2.04%) 하락한 7,901.64로 마감했다.
코스피지수는 21일 39.38포인트 내린 1,087.43으로 출발해 한때 1,100선이 무너졌지만 개인의 매수로 낙폭을 줄이면서 23.20포인트(2.06%) 떨어진 1,103.61에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는 5.76포인트(1.61%) 내린 352.43으로 이틀째 하락했다.
다만 수출 업체들이 설 자금 마련을 위해 달러를 풀면서 외환시장은 비교적 안정된 모습이었다. 환율은 1.5원 내린 1,373원으로 마감해 주식시장의 불안과는 달랐다.
◆실물경기 침체 가속 우려
이날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3.3%에서 0.7%로 내려 잡았다. 이는 국내기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며 해외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들과 유사한 정도의 비관적인 성장률이다.
KDI는 성장률 예상치를 이처럼 하향조정하게 된 배경으로 '세계경제의 급속한 추락'을 꼽았다. 세계경제의 하강속도가 주요 국제 전망기관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도 이날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4%로 전망했다. 해외 경기의 가파른 악화 이전에도 우리 실물 경기는 이미 상처투성이다.
지난해 11월 광공업 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14.1% 급락해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12월 신규 취업자는 1만2천명 감소해 5년여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날 발표된 1월 1∼20일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9% 가량 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에 따라 월간 기준 수출은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2차 위기 가능성 '고개'
이런 상황 때문에 해외발 2차 금융위기 가능성을 점치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1차 위기의 여파로 실물경제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어서 2차 쇼크가 가시화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도 없지 않다.
해외 주요 금융기관들의 실적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잠재 부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올해 들어 해빙 기미를 보이던 국제금융시장이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1차 위기의 여파로 진행 중인 구조조정 작업도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 2차 쇼크가 온다면 충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로 당한 1차 때와는 달리 주요국들이 금융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있는데다 재정 확대를 통한 대규모 경기 부양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어서 2차 위기는 기우에 그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조동철 KDI 거시경제금융연구부장은 "금융위기 가능성은 항상 제로는 아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BOA가 파산할 것 같다면 미국 정부가 리먼 브러더스처럼 그냥 놔두지는 않을 것이며 미 정부가 어떤 식으로 금융 부실에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 정부마저 그럴 힘이 없다고 시장이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인데 그때는 금융 쇼크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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