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여년간 이어진 호황 속에 기업들은 설비 투자 확충과 기업 인수ㆍ합병(M&A) 등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로 현금 흐름이 악화되면서 투자는 언감생심이고 당장 기업을 운영할 운전자금 마련도 여의치 않다.
문제는 기업들의 운전자금 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이다. 호황으로 넘쳐나던 현금을 물쓰듯 하던 기업들에게 운전자금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찰이 왕'인 시대에 외부에서 자금 조달이 어렵다면 내부에서 마른 수건을 짜내는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위크(HBR)는 최신호(5월호)에서 운전자금만 효율적으로 관리해도 상당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운전자금을 관리하는 데 유의할 점 몇 가지를 지적했다.
HBR은 우선 손익계산서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기업들은 보통 손익계산서에 따른 수익을 근거로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의외의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구매 담당자가 납품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상대방이 가격 할인을 조건으로 필요 이상의 자재를 구매하라고 하면 그는 이 제안을 쉽게 수락한다. 당장 쓸모 없는 자재량에 해당하는 현금을 묶어 두는 셈이지만 이런 항목은 손익계산서에 드러나지 않아 인센티브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재를 싸게 구매한 데 따른 이익이 재고 비용보다 크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 반대라면 기업은 손실을 입게 된다.
기업들이 주가를 의식해 장부상의 매출을 늘리는 데만 급급하는 것도 문제다. 이 경우 필요 이상의 재고가 쌓이는 것은 물론 결제가 어음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운전자금의 흐름이 막히게 된다. 외상 매출이 현금화될 지 미지수인 데다 매출 장부를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받는 영업 사원들도 수금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같은 문제를 겪던 한 제련업체는 영업 사원들에게 고객의 재무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물품 인도와 동시에 대금을 치르도록 했다. 그 결과 이 회사가 받은 어음의 부도율은 12%에서 0.5% 밑으로 떨어져 연 평균 300만 달러의 추가 유동성을 확보했다.
생산 부문도 마찬가지다. 최종 제품의 결함률과 같은 품질 기준만 강조하는 것이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물론 품질은 기업의 명성을 좌우하고 품질이 낮은 데 따른 보증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품질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공정이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데 따른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고객들은 제품에 적용된 복잡한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더 많은 돈을 들여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고 HBR은 설명했다.
유럽의 한 구동장치 제조업체는 제품 안전성이 뛰어나기로 명성이 높았지만 복잡한 공정 탓에 생산공정 기간이 경쟁사들에 비해 3배 이상 길어졌다. 이후 생산 공정을 단순화해 기간을 20일 단축한 결과 연 평균 2000만 유로를 절약할 수 있었다.
기업들이 납품업체 및 고객과의 관계를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라고 HBR은 지적했다. 납품업체들이 대금으로 지급되는 어음의 만기를 줄인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고객에게 제공해온 서비스를 폐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맥도널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은 보통 납품업체에 30~45일 만기의 어음으로 결제하는데 만기가 앞당겨진다고 고객에게 햄버거 값을 미리 내놓으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HBR은 기업들은 고객보다는 납품업체에 대한 협상력이 떨어진다며 각각의 관계에 적절한 협상력을 갖추라고 조언했다.
HBR 아울러 은행들이 기업의 신용 평가 근거로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을 활용하고 있지만 이 수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이 기업의 지급 능력을 반영하기는 하지만 수치만 너무 높이다 보면 오히려 유동성 위기에 처해 파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HBR은 운전자금을 관리하는 데 무턱대고 업계의 기준을 벤치마킹하지 말고 보다 넓은 시각으로 고객과 납품업체, 생산공정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 수치로 직원들을 평가하지 말고 직원들이 고객 및 납품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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