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권의 싱글 톨 아메리카노) '매몰비용' 그 '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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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6-0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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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을 시작한 뒤엔 그만두려고 해도 그때까지 들어간 비용이 아까워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이미 써버려 돌이킬 수 없게 된 비용을 ‘매몰비용(Sunk cost)'이라고 한다.

예건대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빌딩 건설을 위해 설계에 10억원을 썼다고 치자. 그런데 경기가 얼어붙어 빌딩을 지어도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때 투자자는 설계비를 날리는 셈치고 공사를 중단할지, 끝까지 공사를 강행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론상으론 현 시점에서 10억원을 잃고 끝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바람에 공사를 강행하기도 한다. 결국, 투자자는 매몰비용에 새 투자금까지 모두 날리게 된다. 몸 버리고 돈도 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

남녀 관계도 비슷할 때가 있다. 학창 시절부터 사귀다 혼기를 맞은 커플이 있다. 서로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한나, 말하야 하나’ 한번쯤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그놈의 정’ 때문에 결혼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혼기를 놓친 이들은 새 연애상대를 찾을 엄두가 나지 않거나 그럴 여력이 없다는 점이 더 큰 이유일 수 있다.

오랜 교제에 들인 시간과 정성, 즉 매몰비용이 ‘정’을 합리화 한다는 얘기다. ‘너 없인 못살아’가 어느새 ‘너 때문에 못살아’로 변할 수 있다.

또 기말고사를 대비해 한 학생이 가장 어려워하는 수학공부 때문에 밤을 새웠다. 그런데 기말고사 전날 수학시험을 보지 않기로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수학공부를 하느라 뺏긴 시간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또는 매몰비용을 잊지 못하고 이에 연연하면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매몰비용은 금전일수도 시간일수도 있다.

경영학자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매몰비용에 매달리지 말하고 권한다. 매몰비용은 잘못된 결정을 합리화하는 근거가 된다. 또 매몰비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비용인데도 투자로 오인되기도 한다.

이때 투자는 계속 돈을 쏟아부으면 언젠가 투자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잘못된 결정인데도 끝장을 보려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하들리 아키스는 1985년 심리테스트를 통해 개인적인 결정에서 매몰비용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50%나 된다고 지적했다. 그 후 심리학계의 연구에선 개인보다 집단이 매몰비용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업이 새 사업을 시작하려던 계획,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투자사업을 결정할 때 매몰비용에 휘둘리기 쉽다는 것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국내에 자체적으로 맥주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 부회장은 “맥주 사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다.

롯데그룹은 3년 안에 1조원을 투자하면 맥주 시장점유율 20%를 획득할 수 있다는 내부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류업계에서는 롯데의 맥주 공장 설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수천억 원에 이르는 투자비용으로 롯데그룹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수개월간 끌어오던 오비맥주 인수에 결국 고배를 마셨다. 시간적 매몰비용을 써버렸다. 올바른 결정인지 이번에는 끝장을 볼 심산이다.

박상권 기자 kwo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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