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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향 부지휘자 성시연
“음악가들이 음악을 하면서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제가 바라는 지휘자상입니다. 음악가들은 음악회 그 한 순간을 위해서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입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 순간에 음악가들이 자유를 만끽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권위적이기보다 인간적이고, 같은 음악가로서 단원들과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격려해 줘야죠.”
지난 3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영입된 지휘자 성시연(34). 그는 각종 세계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듭하면서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콩쿠르 우승, 이듬해 말러 국제 지휘콩쿠르 1위 없는 2위, 올해 초에는 독일지휘자상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에게는 항상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미국 보스턴심포니의 130여년 역사상 첫 여성 부지휘자라는 것. 현재도 그는 서울시향과 보스턴심포니의 부지휘자를 겸임하고 있다.
지난 5일 ‘비오투오조 시리즈 III’를 통해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로서 첫 공연을 가졌다. 그는 이번 공연에 대해 “2008년 1월 서울시향 지휘로 한국 무대에 데뷔를 했는데 떨리기도 하고 부담감도 컸다. 이번 공연 또한 그때와 같이 설레고 부지휘자로서 수준급의 연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많았다”며 심경을 밝혔다.
그는 앞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찾아가는 음악회 등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포부도 함께 밝혔다. “독일은 작은 연주회라도 관객석이 꽉 찬다. 문화생활의 한 부분으로 오케스트라를 즐기는 분위기다. 이웃 사람들과 얘기해 봐도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많이 접한 영향이 큰 것 같다. 한국도 클래식을 가까이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기회가 된다면 교도소나 고아원 등에도 찾아가고 싶다.”
◆“많이 도전하고 많이 실패하고”
성시연은 원래 피아니스트였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후 취리히 국립음학원, 베를린 국립 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25세 때 지휘 공부를 시작했다. 피아노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도 있었고 새로운 길을 갈망해 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많이 가고 지휘 비디오도 보게 되었다.
“빌헬름 푸르트 벵글러(1886~1954)의 지휘를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한 사람이 10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끌며 단원 개개인의 능력을 120% 이끌어내는 것, 그 카리스마에 놀랐고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친구의 피아노 연주회 때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시작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좋은 기억이 내재되어 지휘자가 되는 것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지휘는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다”는 그는 지휘봉을 처음 잡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독일에서 지휘 공부를 할 때 학교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지휘하게 되었다. 첫 지휘였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고 선생님도 칭찬하셔서 지휘는 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개월 후 큰 좌절을 겪었다. 지휘봉을 내리치는 템포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내가 원하는 타이밍 등 공부를 많이 했다. 실패를 많이 해야 원하는 것을 빨리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생각 없이 지휘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그런 내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많이 도전해 보고 많이 실패해 봐야 하는 것 같다.”
이런 도전들이 여러 콩쿠르에서의 결과물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지휘 콩쿠르에는 35살이라는 나이 제한이 있어 더 늦기 전에 많은 콩쿠르에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고배를 마셨다. 비디오 심사에서부터 떨어진 것. 그 후 중요한 부분만 모아 편집한 비디오를 보내는 등 많은 연구 끝에 본선에 참가할 수 있었다. 처음 우승한 것은 독일 여성 지휘자 콩쿠르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들과 함께 겨루는 국제 콩쿠르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싶었다. 그 2년 후에 참가해 우승한 것이 국제 솔티 지휘자 콩쿠르였다.
◆“음악 앞에서는 여성 아닌 음악인”
“여성 지휘자라는 것이 특별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독주자를 봤을 때 여성 피아니스트,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여성 지휘자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음악 자체에 있어서는 남녀가 따로 없다. 지휘자는 지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 행정능력, 추진력, 분석력 등을 필요로 해 남성적 영역이라고 하는 선입견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선배들이 ‘Be yourself'라는 충고를 많이 한다. '너 자신이 되라'. 남녀를 떠나 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라는 것이다. 더 이상 ‘여성’ 지휘자라는 질문도 안 했으면 한다. ‘여성’ 지휘자라는 말을 들으면 두드러기가 난다. 음악 앞에서는 여성이 아니라 음악인으로서 음악을 생각한다. 이런 질문을 받지 않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는 먼저 큰 꿈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지휘자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맞는지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음악을 잘 하고 좋아하지만 인간관계에 힘들어 하고, 오케스트라 앞에 섰을 때 받는 비난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감수해 낼 수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알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면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불필요한 주위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에게는 바쁜 스케줄이 이어진다.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는 내년 여름까지 계약되어 있다. 서울시향의 부지휘자, 객원 지휘자로서의 활동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그는 “오페라를 지휘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지휘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오페라 지휘를 하면 음악적 세계관도 많이 틀려질 것 같다”며 오페라 지휘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서양 문화를 알아가듯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문화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를 느꼈으면 한다. 또한 클래식을 들으면 영혼이 맑아진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처음에는 지겨울 수도 있지만 조금씩 알아가면서 클래식의 참맛을 느꼈으면 한다”며 클래식 사랑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정아 기자 ljapcc@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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