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기침체 속에 미국 대기업들이 자금 회수 시기는 앞당기고 지불시기는 늦추는 방식으로 현금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 컨설팅업체 REL컨설턴시가 미국 기업들의 현금 운영 실태 조사 결과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 매출 50억 달러 이상의 대기업들은 지난 2분기 협력업체들에 대금을 지급하는 데 평균 55.8일이 걸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53.2일에 비해 5% 늦어진 것이다. 반면 대금 회수는 41일이 소요돼 일년 전 41.9일보다 빨라졌다. 받을 돈은 빨리 받고 줘야 할 돈의 지급시기는 미루고 있는 것이다.
반면 연 매출 5억 달러 이하의 기업들은 같은 기간 대금을 지급하는 데 평균 40.1일이 걸려 일년 전 42.9일보다 시간이 6.5% 단축됐다. 하지만 자금 회수에는 58.9일이 걸렸다. 이는 전년 동기 54.4일에 비해 8% 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는 신용경색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은행들이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대기업들 사이에 현금부터 챙기고 보자는 심리가 만연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기업들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대기업들은 일방적으로 협력업체들에게 불리한 대금 결제 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안호이저부시는 올 초 협력업체들에게 대금 결제 기간이 기존 30일에서 120일까지 연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대표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도 지난 2분기 대금 회수 기일을 줄여 단기간에 38억 달러 규모의 현금을 회수했다.
생활용품 제조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 역시 최근 "현금 흐름이 신통치 않아 협력업체들로부터 대금을 빨리 회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신용경색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힘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며 "대기업들은 공급업자나 고객들에게 자신들의 조건을 강요할 수 있지만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아주경제= 정은선 기자 stop1020@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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