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9일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상당'의 제재를 확정하면서 논란이 새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예금보험공사도 조만간 예보위원회를 열어 황 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릴 예정이다. 황 회장이 금융당국과 예보의 징계에 불복해 법적 대응에 나선다면 치열한 법적 공방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징계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공적자금 투입 기관인 우리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낼 때까지 방관하다가 `사후 징계'에 나선 감독 당국의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는 양상이다.
◇금융당국 중징계 확정
금융위는 이날 황 회장에 대해 '업무집행의 전부정지 3개월 상당'의 중징계를 확정했다.
금융위원회는 제재 이유로 황 회장이 재직 당시 IB 본부에 과도하게 높은 자산 및 수익 증대 목표를 부여해 사실상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의 투자 확대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CDO와 CDS가 유통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아 중도매각이 어렵고, 매각대상도 한정돼 있다는 상품의 특성을 간과한 채 무모한 투자로 총 투자 손실액 1조 5천억 원 가운데 1조2000억원의 손실을 초래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황 회장이 투자 관련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
앞서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도 이 같은 이유로 황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금융위에 건의했고, 금융위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금융당국의 징계가 확정됨에 따라 예보도 조만간 우리금융이 지난해 4분기 적자를 내는 등 경영이행약정(MOU)을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릴 예정이다.
예보도 황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상당'이나 그보다 수위가 높은 '해임권고 상당'의 징계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예보는 황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황 회장은 이날 징계가 확정된 직후 "금융위 결정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를 심사숙고한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재심청구나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금융권은 관측하고 있다.
황 회장은 그동안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해 법규를 위반한 적이 없고 금융위기로 발생한 투자 손실은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해왔다. 이번 징계로 황 회장의 최고 경영자로서의 평판과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된 만큼 정면 돌파를 통해 명예회복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감독당국·예보 책임론 부상
감독당국 책임론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은행이 막대한 손실을 낸 데는 감독당국의 감독 소홀도 한몫했다는 주장이다.
2004년3월~2007년3월까지 황 회장이 우리은행에 재직했던 때는 금융권이 앞다퉈 대형 투자은행(IB)로의 도약을 꿈꾸며 해외진출과 자산 확대에 열중하던 시기였다. 당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도 국내 은행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해외진출 뿐 아니라 파생상품 투자 등 IB 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이런 일련의 분위기 속에서 황 회장의 '과감한' 파생상품 투자도 이뤄졌다.
때문에 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감독당국은 이를 방관했고,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뒷북 제재'라는 비판도 나온다. 금감원은 2007년6월 우리은행 종합검사 때는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한 법규 위반 내용을 적발하지 못했다가 올해 6월 검사에서 위험관리 규정을 위반했다고 뒤늦게 지적한 것.
예보도 지난해 4월 예보위에서 우리은행이 당시 4000억 원가량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본 것을 알고 투자 결정에 관여한 IB 담당 부행장에게 정직 처분을 했으나, 현직을 떠난 황 회장에게는 성과급 차감 조치만 했다.
예보는 특히 작년 4분기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 규명을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미뤄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황 회장은 현 정부 들어 '실세'로 분류됐었다.
예보 고위 관계자는 "대주주라고 해서 우리은행 경영에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면 바로 '관치경영' 등 지적이 나온다"며 "전문 경영인에 맡겼으면 자율 경영을 인정해주고 그 결과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금융회사의 투자와 관련한 세부적인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는 없다"며 감독당국의 책임과 황 회장 제재는 구별해서 봐야 한다는 논리를 견지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파생상품 시장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고 감독 체계가 미흡한 상태에서 결과적으로 투자 손실이 났다고 해서 담당자를 처벌하는 것은 감독당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밖에 안 된다"며 감독당국도 함께 징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인터넷뉴스팀 기자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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