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무대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정적을 죽이거나 정적이 죽지 않는 한 ‘싸움’과 ‘화합’이 반복되는 게 여의도 정가의 생리다.
민주당 복당을 눈앞에 둔 정동영 의원과 정세균 대표가 그런 경우다. 이들은 지난 4월 재보선 당시 전주 덕진 공천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고 다시는 같은 당에 몸을 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반년이 지났고 이들은 곧 민주당에서 새로운 권력투쟁 2라운드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전북태생, 전주지역 고교 졸업, 15대 국회입성, 열린우리당 당의장, 참여정부 시절 입각. 정 대표와 정 의원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항상 정 의원이 앞서나갔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으로 시작은 같았지만 정 대표가 무명의 신인이라면 정 의원은 당대의 슈퍼스타였다. 2000년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을 거머쥔 정 의원은 2004년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초대 당의장에 올랐다. 그 시절 정 대표는 그저 텃밭 호남권 의원 중 한명이었다.
정 대표는 입각도 늦었다. 정 의원은 2004년 대통령 후계자 자리인 통일부 장관에 등용됐다. 그러나 정 대표는 2006년에서야 산업자원부 장관에 오른다.
물론 정 대표가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원내대표를 맡기는 했다. 그러나 당의 양대주주인 정 의원과 김근태 전 의원이 빠진 자리를 메우는 관리형 리더였다. 입각 당시 ‘여당 의장까지 지낸 사람에게 산자부 장관이 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을 만큼 정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은 취약했다.
그러나 반전은 일어났다. 정 의원은 17대 대선에 나섰다가 패배했고 18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열린우리당 최대 계파로 군림하던 ‘DY(정동영)계’도 동반몰락했다. 공천과정에서 윤원호, 서혜석, 채수찬, 박명광 등 비례대표들이 모두 탈락했고 그나마 공천을 받은 20명 정도의 의원도 수도권에서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당권은 ‘친손(친손학규)계’와 수도권 386재선그룹, 충청·호남권 일부를 아우른 정 대표에게 맡겨졌다. 지난 4월 총선 이들은 격렬하게 대립했다. 정 의원은 ‘전주 덕진’ 출마를 희망했으나 정 대표는 거부했다. 나아가 정 대표는 “19대 총선에서 텃밭인 호남권에서 출마치 않겠다”고 엄포를 놨고 정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결행했다.
대척점에 섰던 이들은 또 만난다. ‘호남의 맹주’를 자부하는 정 의원, 강력한 제1야당을 만들겠다는 정 대표. 이들의 당권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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