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냉장고 리콜과 글로벌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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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11-0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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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호 산업에디터겸 IT미디어부장

   
 
김병호 산업에디터겸 IT미디어부장
삼성전자가 21만대에 달하는 지펠 냉장고를 자발적으로 리콜하기로 했다는 발표는 소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가 리콜에 나서기로 한 냉장고는 2005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생산해 국내에서 판매한 양문형 제품이다. 21만대에 달하는 냉장고 리콜은 국내 백색 가전 부문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의 이번 조치는 지난달 10일 경기도 용인시 동백동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2006년형 지펠 냉장고(680ℓ) 폭발사고가 계기가 됐다.

사고 원인은 냉장고 냉매파이프의 서리를 제거하는 히터(제상히터)의 연결 단자에서 누전이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 사고로 냉장고 문이 날아갔다. 다용도실 미닫이 유리문과 창문이 깨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리콜 대상 기간에 생산된 제품이 아니더라도 동일 모델의 제품에 대해 무상으로 안전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고 밝혔다.

대부분 냉장고의 폭발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나, 절연체 일부에서 고객 안전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원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리콜을 하기로 했다는게 삼성의 설명이다. 삼성은 유럽에 수출된 모델에 대해서도 동일한 리콜을 취하기로 했다.

냉장고 폭발사건은 발생 초기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보고되었고, 이 회장은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왔던 ‘품질경영’ 기조가 무너진데 대해 크게 화를 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이 전 회장이 지난 20여 년간 품질 경영을 강조해 온 것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지난 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휴대전화와 무선전화 15만대, 시가 500억 원어치를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린 일은 잘 알려진 일이다.

‘리콜’은 모든 기업들이 꺼리는 용어다. 애써 만든 제품 가운데 어떤 부분들이 결함이 있어 다시 고쳐주겠다는 것은 마치 언론사가 신문을 발행했는데, 잘못된 내용이 있으니 다시 발행해 보내주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에따라 대다수 기업들이 ‘리콜’을 해야 할 상황이면서도 문제를 제기한 몇몇 소비자들에 대해 수십배 보상해주고 덮어두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 세계 굴지 브랜드의 자동차 급발진 사고, 주행 중 원인 모를 급가속, TV 폭발사고 등 수없이 많은 리콜 요소들이 달력에 묻혀 넘어가고 있다.

삼성이 사고 발생 20일 만에 신속하게 사고 원인을 발표하고, 대책을 내놓은 것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조치는 삼성이 소비자에 대한 기술적,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경영철학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잘못한 게 있으면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밝히고, 보상할 것은 보상한다는 ‘정도 경영’의 한 측면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창립 40주년을 하루 앞두고 냉장고 폭발과 21만대의 리콜을 발표하는 것은 ‘기술 삼성’, ‘글로벌 삼성’으로 도약하기 위한 자신감의 표현이요, ‘고해성사’를 통한 재도약의 다짐으로 볼 수 있다.

잔칫날을 하루 앞두고 이런 발표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삼성 내부에서는 40주년 행사를 마친 후에 21만대 리콜을 발표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많았지만 ‘정도 경영’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전자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2020년 매출 4000억 달러 달성과 IT업계 1위 기업 도약 목표를 제시했다. 수만분의 1 확률임에도 과감하게 품질 불량 사실을 인정하고 리콜 조치를 단행한 이번 결단은 새 도약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번 삼성의 조치는 다른 기업에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돼야 한다. 어느 기업이든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손톱만큼이라도 제품에 하자가 있다면 떳떳하게 밝히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드라이버로 100야드를 치기는 쉽지만, 250야드를 치는 사람이 단 10야드를 더 치기 위해서는 그립부터 스윙, 근융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비거리론’은 잘 알려진 비유다.

업종을 불문하고 어떤 기업이라도 ‘글로벌 톱 컴퍼니’ 반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전 임직원들의 사고를 세계적인 글로벌기업 경영자, 종사자들의 수준으로 맞춰나가야 한다.

잘못된 것은 숨기기 급급하고 편법-변칙 경영을 일삼으면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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