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08년부터 시행하겠다던 수급금 전용통장제가 표류하면서 서민들의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
19일 시민사회단체와 금융권에 따르면 최저 소득 계층이 기초생활보장 수급금마저도 압류당하는 피해 사례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당국과 금융권은 비용 부담 문제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민사집행법상 기초생활보장 수급금이나 국민연금 등은 압류를 할 수 없는 압류금지채권에 해당된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개인 통장에 입금하면 법적 성질이 예금 채권으로 바뀌기 때문에 압류가 가능해진다. 통장에 입금된 기초생활보장비는 압류금지의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한달 수입이 50만원(1인 가족 기준)조차 되지 않는 최저 소득 계층이 기초생활비마저 압류당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시민사회단체 민생연대 홈페이지에 한 네티즌은 "정부에서 받는 돈 60만원에 의존하면서 아이와 단 둘이 근근이 살고 있는데 이마저도 압류돼 수급비가 그대로 빠져 나가버렸다"며 "기초수급증명서까지 보내며 어려운 처지를 호소했지만 돌려주겠다던 채권사는 묵묵부답이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현행법상으로 마땅한 구제수단이 없다는 것. 특히 압류당한 기초생활비를 돌려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법률사무소 참벗의 최승원 사무장은 "채권의 성질을 고려해보면 채권자가 통장에 있는 기초생활비를 압류했다고 해도 이를 부당이익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소송으로 되찾아온 사례가 있긴 하지만 소송비용과 기초생활비를 비교해보면 소송의 실익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지난 2007년 9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을 압류의 공포에서 해방시키겠다'며 기초생활보장 수급금 전용통장을 만들어 2008년 1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수급금만 입금할 수 있고 본인이나 제3자의 입금은 제한되며, 압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통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수급금 전용통장제 관련 논의는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최신광 사무관은 "당시에 의욕적으로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비용 부담 문제로 아직까지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158만명에 달하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을 위해 제1금융기관이 다 전용통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을 국고에서 지원하지 않는 이상 이 제도 추진은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도 수급금 전용통장에 관한 법률 3개가 동시에 상정돼 있지만 이 법안 역시 같은 문제 때문에 통과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수급금 전용통장제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수급금 전용통장에 따르는 시스템 개발 비용, 관리 비용 등을 부담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 비용을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기관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통장 하나에 압류금지만 걸어두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런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며 "또한 이 통장을 별도로 관리하는 것도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고득관 기자 dk@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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