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외교 시리즈> 中 외교부 수장 양제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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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1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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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부시 통역 계기 '승승장구'‥외교부 수장 올라<br/>다자외교의 주류 '미국통'실세 대미관계 성과 피치<br/><중국외교를 움직이는 사람들Ⅳ>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중국 외교의 특징은 '다자외교'다. 핵보유국 그룹,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세계 투자·무역 및 아시아 지역의 중추, 사회주의 대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복합적 입장을 갖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다자간 외교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중국 외교의 또 다른 특징은 '미국통'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세계의 패권국가로서 중국에 위협적인 존재였던 미국에 대한 불안감은 미국 문제에 정통한 외교인력을 중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 외교부 주름잡는 '미국통'

중국외교부는 행정 및 기획업무를 제외하고 외교실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아주국·북미대양국·국제국 등이 8개의 실무국이 있다.

그 중 아주국은 한국·북한·일본·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지역 국가들과의 양자관계 외교뿐만 아니라 아세안(ASEAN)·동아시아정상회의(EAS)·6자회담 등 다자관계 외교를 담당하고 있다.

북미대양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캐나다·호주 등과의 양자관계와 이 지역의 다자관계 외교를 담당하고 있다. 국제국은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인권·사회·난민 등과 관련된 외교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과 국제기구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외교부 상무부부장으로 임명된 장즈쥔 외교부 당위원회 서기와 류제이 대외연락부 부부장이 대표적 인물이다.

또 장예수이 미국대사·리바오동 유엔대사·류샤오밍 영국대사 등도 미주국과 국제기구국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 중국연구센터 서상민 부소장은 "여전히 아주국 경력을 가진 부장과 부부장, 대사들이 수적으로는 많지만 최근 미주국과 국제기구국 출신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고 그 영향력 또한 커졌다"며 "외교부의 내의 미주국과 국제기구국 출신의 젊은 국장급 간부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49년 신중국 성립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외교부장은 모두 열 명이다. 그 중 미국대사를 역임한 부장은 리자오싱(李肇星)과 양제츠 두 명 뿐이다. 현재 중국 외교에서 중요한 양대 축인 한반도 문제와 대미외교는 다이빙궈(戴炳國) 국무위원이 이끌고 있다.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과 양제츠 외교부장은 다이빙궈를 좌우에서 보좌하고 있다. 지난 2003~2007년까지 외교부장을 지낸 리자오싱 전 주미 대사는 중국 외교관 중 최초로 외교부장에 오른 인물. 양제츠 부장이 그의 뒤를 이어 주미 대사와 외교부장을 맡았다.

◆양제츠 '미국통'으로 성장

중국외교부장인 양제츠는 한 마디로 '뼛속까지 미국통’인 인물이다. 주미 대사 4년을 포함해 주미 중국대사관에서만 10년을 근무했다. 그와 같은 '미국통'이 외교부의 수장을 맡은 것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커지면서 대미외교를 중요시하는 중국 지도부의 의중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양제츠 중국외교부장은 1963년 상하이외국어학원 부속중학교에 입학해 영어를 배웠다. 당시 룸메이트가 주 유엔대사, 외교부 상무부부장을 거쳐 현재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인 왕광야(王光亞)다.

양제츠가 '미국통'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런던정치경제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외교부 번역실 요원으로 근무하던 1977년부터다.

1974년부터 2년 동안 미국 국무성 베이징연락사무소 소장으로 베이징에서 근무했던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가 1977년 다시 중국을 방문, 티벳여행을 할 때 통역을 맡았던 사람이 양제츠다.

당시 같이 동행했던 미국측 인사로는 후에 주중 대사가 되는 제임스 릴리(James R. Lilley)도 있었다. 당시 부시 일행은 양제츠의 안내와 통역에 만족해했다.

이런 인연으로 양제츠는 1983~ 1987년 주미 대사관 2등서기관·1등서기관·참사관 등으로 근무한다. 그리고 다시 1993~1995년까지 주미 대사관 공사로 근무, 5년 후인 2000년 12월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 곧 바로 주미 대사로 발령받아 대미관계 강화에 힘쓴다.

양제츠의 미국 인맥은 2001년 중국 남중국해 하이난(海南) 섬에서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해 중국 전투기가 추락하고 조종사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그는 미국 국무원, 의회 등을 돌아다니며 중국 측 입장을 설명하고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미국 TV에 출연해 미국인이 일상생활에 발생할 수 있는 자동차 사고를 예를 들면서 미국 정부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하는 등 미국 언론을 이용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중국에 사과했고, 중국은 폭발 직전이었던 중국의 반미시위를 잠재울 수 있었다.

2007년 4월 양제츠의 전임 외교부장이었던 리자오싱이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리자오싱을 대신해 외교부장 자리에 앉은 양제츠는 중요하고 어려운 시점인 2011년 1월 미국을 국빈 방문했다.

미ㆍ중 정상회담은 중국 입장에서는 의제나 의전을 비롯 전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자리였다.

서상민 부소장은 "중국 외교가는 미ㆍ중 정상회담의 성과를 양제츠의 '엄격·근면·세심·치밀'한 업무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 EAI 중국연구센터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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