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에 제한적인 단독조사권을 주는 내용의 이 개정안은 법사위에 1년 넘게 발목이 잡혀있다. 그만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소관기관으로 둔 정무위와 한은을 소관기관으로 둔 재정위가 치열한 알력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금융위·금감원과 개정안에 찬성하는 한은이 대치가 국회 양대 상임위로 이어진 것이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법사위는 오는 6월 임시국회 회기내 한은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또다시 정무위와 재정위의 물밑 기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이 개정안은 한은이 금융회사에 긴급여신을 제공하면 대출자 자격으로 조사가 가능하고 금감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한은의 공동검사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제한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법사위의 ‘상층부’는 개정안에 대체로 동의한다.
개정안에 찬성 입장인 우윤근 법사위원장(민주당)은 “여야가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주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본회의 통과 여부는 판단키 어렵지만 상임위 차원에서는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법사위의 여야 간사도 개정안을 찬성하고 있다. 한나라당 간사 주성영 의원은 “당 정책위에 한은과 금융위간 다툼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며 “조정이 안되더라도 국회에서 입법적 절차(과반 의결)를 통해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간사 박영선 의원도 “금감원의 독점적 감독기능에 견제가 필요하다”며 조속한 개정안 처리를 주장했다.
문제는 법사위 소속 ‘평’의원들이다. 이들은 공개.비공개적으로 재정위와 정무위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여당의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법안을 처리하지 말라는 금융위의 항의 전화는 물론, 정무위 소속 의원들의 압박에도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정무위는 금융 검사권 남발과 한은 조직의 비대화 등을 문제삼으며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 간사 이성헌 의원은 “한은은 물가를 조절하는 국책은행 고유의 권한이 있는데 여기에 감독기능까지 주면 ‘공룡조직’을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무위를 거친 한나라당 이한구 전 정책위의장은 “감사를 받는 입장을 생각하면 감사기관 난립이 결코 좋은 게 아니다”며 “금융기관 검사권은 정부조직의 권한이지 독립적 지위가 있는 한은의 권한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또 “한은이 조사 후 내린 시정조치가 금감원 결정과 다를 경우 어느 정부부처가 나서 조율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재정위 소속 의원들은 한은에 부여하는 단독조사권이 ‘제한적’임을 강조하면서 독점적 금융감독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한나라당 김성식 정책위부의장은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금감원의 독점적 금융감독시스템은 문제가 많다”며 “감독당국이 사전에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한은에 제한적인 조사권을 주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같은 당 서병수 의원도 “지금 구조로는 금감원의 협력 없이 한은이 어떤 조사도 하지 못한다”며 “한은에 일정한 조사권한을 줌으로써 금감원의 감독기능도 견제하고 제기능 회복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가세했다.
이같이 재정위와 정무위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처리의 ‘키’를 쥔 한나라당 정책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한은과 금감원의 공동검사권 양해각서(MOU)의 법제화 추진 등 다양한 대안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국민의 걱정이 큰 만큼 금융위 등 관계부처와 이견을 잘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정책위 일각에서는 법사위에서 개정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신속히 마치고 본회의로 넘겨 찬반토론을 거친 뒤 ‘자유투표’로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책위 고위관계자는 “한은법 개정안은 당론을 정할만한 사안이 아니다”며 “금융감독시스템 개편에 여야가 동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원들의 소신을 들어보고 본회의에서 자유표결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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