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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나의 친구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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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6-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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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미디어 작가겸 출판사 대표)


독일에서 한 16세 소녀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생일파티 초대를 공개로 설정해서 1600여명의 온라인 '친구들'이 그녀의 집을 찾아왔다는 해외토픽 뉴스가 얼마 전에 화제가 됐다. 막무가내로 모여든 군중을 통제하려 경찰이 출두하고 주인공 소녀는 할머니 집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주인이 부재한 파티에 모여든 사람들에겐 오늘의 SNS 문화가 가능하게 해준 어찌 보면 광적인 이벤트 자체가 놀 거리이고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즐기는 모습이다. 네티즌들이 플래시몹(flashmob)과 같은 군중 퍼포먼스를 오프라인에서 실현하는 즐거움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소녀가 신변의 위험을 느껴 대피했다면 집단테러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통신 서비스는 날이 갈수록 번창하며 미디어 테크놀러지의 망은 빠르게 발달하는데, 이상하게도 그것들의 주체인 우리들의 사람을 향한 안테나 촉수는 갈수록 무뎌지는 것 같다. 현대인들의 보이지 않는 더듬이는 자꾸만 미디어의 세계를 향해있어 타고난 본능적 동물적 감각을 점차 퇴화 시킨다는 인상을 준다. 하루는 스쿨버스 안에서 한 학생이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어디야?”라고 물으니, 바로 뒷자리에 앉은 학생이 “스쿨버스 탔어. 너는 어디야?”라고 말하고, 앞자리 학생이 “나도 막 탔는데...” 하면서 뒤돌아보니 바로 뒤에 통화한 친구를 발견하고 서로 놀라는 광경을 지켜본 적이 있다. 이처럼 많은 현대인들의 감각은 미디어 기기가 프로그램하는 방식으로 길들여지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을 보다 많은 '친구들'을 알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하며, 자본주의 경쟁사회 속에서 지치고 외롭기 마련인 현대인들은 그나마 모니터 창 너머의 '친구들'과 교류하며 재미와 위로를 얻기도 한다. 직접 사람과 마주하고 대면하는 일보다는 통신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이에 따라 알게 모르게 미디어 인터페이스가 고안된 방식으로 신속하고 간편한 단문 메시지에 갈수록 익숙해지며 대화의 질도 친구에 대한 가치도 은연중 하향평준화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이렇듯 오늘의 “친구들”은 미디어 기기를 매개로 접하는 경우가 많기에 실제로 함께 사는 식구나 가까운 친구보다, 온라인 친구나 미디어 세상 속에서 보는 연예인 등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캐릭터에 더 친숙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화면 속 인물과 함께 울고 웃고 위로를 받고 흠모 하기도 한다. 그들의 삶이 마치 자신의 삶의 결핍을 채워주기라도 기대하듯 과도한 관심과 필요이상의 집착을 보이며 사생활에까지 간섭을 하려 들기도 한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해 자본을 창출하는 기회로 삼는 것을 놓칠 자본시장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눈과 귀를 완전히 밀폐하고 다니지 않는 한 모니터 속에 사는 “친구들”에 대한 소식을 알고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누가 누구와 연애를 하는지, 이혼을 했는지, 군대를 가는지, 집을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 무엇을 먹으러 다니는지, 무엇을 입는지, 성형수술을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자살을 했는지... 등등 미디어 속 인물들의 시시콜콜한 정보를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 수 있도록 미디어 환경은 필요이상의 친절을 베푼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오래된 친구가 지금 어떻게 살고있는지 깜깜 무소식인 경우가 많지만, 모니터 속에 나오는 알지 못하는 “친구”는 전파를 타고 우리의 방 속까지 친밀하게 침투하여 친분을 착각하게 하기도 한다.

작년 여름에 전화연락을 받았다. 중학교 때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자살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요즘 소위 “절친”이라고 하는 친구 사이였다.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며 멀어지며 소식도 끊겼다. 이혼하고 아이는 전남편이 키우고 혼자 장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건너서 들었었는데, 그 가게를 찾아 들려보기도 전에 친구의 자살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도 본지가 오래되어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득한 친구의 모습은 아직도 중학생 세일러복을 단아하게 입고 활짝 웃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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