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 인사가 산은지주 차기 회장으로 낙점되자 시장은 두 가지 이유에서 깜짝 놀랐다.
우선 정부가 정권 실세로 분류되는 강 회장을 금융기관 CEO로 내려보낸 배경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또 강 회장이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등 CEO 인선 작업이 한창이던 대형 금융지주회사를 포기하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산은지주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컸다.
그러나 정부가 우리금융 매각 방안을 발표하고 산은지주가 공식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히면서 궁금증이 모두 해소됐다.
강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해묵은 과제였던 우리금융 및 산은지주 민영화 완수라는 특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 재편 작업을 강 회장이 주도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정치권과 금융권에 만연한 반(反) 강만수 정서였다.
민영화를 앞둔 산은지주가 우리금융 인수를 통해 수신기반을 확충하고 덩치를 불리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은 일견 당연한 결정이었지만 시장의 초점은 ‘강만수’와 ‘메가뱅크’에만 집중됐다.
산은지주가 인수의 당위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정부의 강만수 밀어주기 의혹은 커져만 갔다.
정치권까지 나서 산은지주가 우리금융을 인수하는 데 필수 조건으로 꼽혔던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을 반대하자 결국 금융당국과 산은지주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우리금융을 산은지주에 넘기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금융 민영화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우리금융 인수 실패는 임기가 2년 반 이상 남은 강 회장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 회장의 결정을 정부의 의지로 해석하는 정서가 사그러들지 않는 한 어떤 인수합병(M&A) 작업도 순항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외환은행을 비롯해 기업은행, 농협, 수협, 우체국 등이 산은지주의 잠재적 인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금융기관은 대부분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거나 일반 은행과 달리 특수한 설립 근거를 갖고 있어 매각이 추진될 경우 정부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강 회장에 대한 특혜 시비도 함께 불거질 수 있다.
강 회장이 남은 임기 동안 산은 경쟁력 강화 및 민영화 기반 마련에 성공하려면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최근 강 회장의 행보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 10일 한국은행 창립 61주년 기념식과 17일 은행장 월례 금융협의회에 잇따라 불참하는 등 스스로 문을 닫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금융 인수 무산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시장 지배자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경제 관료에서 금융기관 CEO로 새 인생을 시작한 강 회장이 겸손과 소통의 미덕을 발휘해 산은지주 민영화의 초석을 닦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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