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내린 집중호우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해 18명이 사망했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가 침수돼 자동차들이 둥둥 떠다니는 상황이 벌어졌다.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인 강남역과 사당역, 광화문 일대는 물에 잠겼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이 폭우에 뚫린 것이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서울시의 잘못된 행정이 재앙을 불렀다며‘인재’라고 주장하고, 정치권도 서울시의 재해행정을 비난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오 시장을 풍자하는 패러디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울이 100년여만에 최대의 피해를 입은 원인에 대한 진단이 속속 나오고 있는 가운데 건축·토목전문가, 환경단체들은 난개발 등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폭우피해가 컸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수방대책 미흡’을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지난해 추석 때도 태풍 곤파스가 서울을 덮쳐 강서, 양천, 종로 등의 피해가 컸고, 광화문 일대가 침수됐지만 이후 대책을 추진하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해 침수 직후 수해예방종합대책을 마련·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서 30년동안 7716억원을 투자해 현재 10년빈도로 시간당 75mm인 하수도시설을 모두 30년 빈도 95mm로 통수 단면을 확대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또‘빗물펌프장 확충·추가 증설, 빗물저류 시설설치, 지하차동 배수펌프 용량증대’ 등의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사업 진척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국회의원은 "서울시가 이후 수해예방종합대책을 내놨지만 현재 공사가 완료된 사업은 3건(4.6%)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서울시 등 각 자치구의 무분별한 개발계획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우면산 산사태의 경우 피해지역 주민들은 “생태공원과 등산로, 저수지 등 무리한 사업으로 산을 파헤친 것이 주된 원인”이라며 ‘인재(人災)’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배수로 확대에는 인색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우면산 배수로는 용량 자체가 너무 작아 폭우가 발생하면 배수로가 기능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자치구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다. 우면산자락에는 지난해 태풍으로 뽑힌 통나무들이 곳곳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이 통나무들은 폭우에 토사와 함께 쓸려 내려와 주변마을을 덮쳐 피해를 키웠다. 더구나 그 상황에서 각종 개발사업이 더해져 빗물 흡수가 어려웠다고 주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 "잘못된 개발계획부터 수정해야"
이번 폭우로 ‘난개발’이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서울지역의 피해가 컸던 원인이 바로 무분별하게 진행된 난개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남태령 전원마을과 형촌마을 피해의 경우 사전에 철저한 계획없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무조건 짓고보자식 개발행태가 부른 결과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서초구가 절개지 C등급으로 분류된 위험한 경사로에 목재계단, 인공호수·인공계곡까지 만든 무리한 미관사업이 산사태를 불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서울에 이 같은 난개발 가능지역이 많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서울시가 장마철을 앞두고 현지 답사 등을 통해 지난 4~5월 산림·공원내 산사태나 붕괴 가능성이 있는 곳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개지가 매봉산, 용마산 등 19개 자치구에 71곳에 이른다. 대부분 친환경주택 조성바람과 맞물려 전원주택이나 도심공원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큰 곳들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개발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이번 폭우피해로 커지고 있다. 강남 양재천, 신림천, 중랑천 등이 매번 범람하는 이유도 서울시가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 겉보기에만 화려한 시설물들을 짓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염형철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수십년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한강의 물살과 지류천들이 좁아지다보니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내부는 곪든 말든 일단 겉보기에만 화려한 전시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광화문 일대가 침수된 원인도 이 같은 인위적 개발로 인한 후유증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청계광장 도로변 밑의 구멍을 통해 빗물이 배수관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청계광장은 구멍의 틈을 너무 촘촘하게 만들어 물이 넘쳐 흐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재해예산 삭감 Vs 증액, 누가 맞나
서울시의 재해예산이 삭감된 것도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오세훈 시장 취임 1년 전인 2005년 641억원에 달했던 수해방지예산이 2006년 482억, 2007년 259억, 2008년 119억, 2009년 100억에서 2010년에는 66억으로 급격히 줄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시는 올해 수방예산은‘하수도 특별회계 1181억, 재난관리기금 2194억, 수방 일반회계 61억’등 3436억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2007년 1794억원에서 2011년 3436억원으로 5년새 1642억원이 증가했으며, 지난해 비해서도 24억원이 증가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시의회 민주당측은 서울시가 말하는 예산 전부를 직접적인 수해예방예산으로 보기 힘들다고 반박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서울시의 해명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며 "하수도 회계의 경우 수해와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부분이고, 재난관리기금의 경우 전용이 규정돼 있는 기금으로 재난 발생 이후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작년과 올해 엄청난 수해가 발생했지만 재난관리기금은 오히려 500억원 가까이 늘어나 2000억원을 넘어섰다"며 "한 마디로 재난 후에도 돈을 쓰지 않았단 얘기"라고 반박했다.
강의용 시의회 의원(민주당)도 "서울시가 말하는 3000여억원의 수방예산은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일반 하수사업 예산을 모두 합한 것일 뿐 실제 재해대비예산이라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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