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단 기획/후주석이 양성해놓은 최대 정치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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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9-0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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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용성 특파원)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기 1년전인 1920년 8월 상하이에서 사회주의청년단이라는 이름으로 결성된 공산주의청년단(이하 공청단). 이후 공청단은 중국의 청년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학습시키고 각종 사회활동을 전개하는 공산당 하부조직으로서 기능을 담당해왓다.

문화대혁명(1966년-1976년) 시기에 활동이 정지되며 암흑기를 맞았던 공청단은 1978년 다시 전국적인 조직으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전국의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정계에 속속 진출했고, 공청단은 자연스레 중국의 정계의 인재사관학교로 변모하게 된다. 게다가 공청단 출신 인물들이 전국적인 정치스타로 부상하면서 정치적 파벌을 형성하게 된다. 공청단파는 현재 중국 정계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문혁 경험한 청년들이 주역

정치세력으로서의 공청단파의 태동은 문혁기간동안 폐지됐었던 중국의 대입시험이 부활한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대학을 가지 못했던 전국의 인재들은 1977년 11월 실시된 대입시험에 일제히 응시한다. 당시 13세 최연소자에서 37세 최연장자까지 520만명이 몰렸고, 이 중 2%만 대학입학 관문을 통과했다. 문혁시기의 사회모순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당시 합격자들은 사회참여와 개혁에 대한 욕구가 높았고, 그 배출구는 단연 공청단이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공청단 중앙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다.

이후 공청단파가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단연 후진타오 주석이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에 오른 2002년으로 볼 수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포석으로 그는 양질의 공청단 출신 인사들을 대거 등용한다. 이후 후주석의 지원에 힘입어 공청단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국무원과 지방정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추게 된다.

◆후진타오, 리커창이 핵심

현재 상무위원 9명중 2명이 공청단파로 분류된다. 공산당 서열 1위인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1983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에 진입했으며, 1984년부터 1985년가지 공청단내 최고위직인 제1서기를 지냈다. 공청단 제1서기는 장관급이며 공청단 중앙서기처를 지휘한다. 그의 제1서기 전임자는 왕자오궈(王兆國) 현 전인대 부위원장이며, 후임자는 쑹더푸(宋德福, 2007년사망)였다.

차기 국무원 총리가 유력한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상무 부총리는 쑹더푸의 후임 제1서기다. 베이징대 법대를 졸업한 후 공청단에 투신한 리커창 부총리는 1985년 중앙서기처 서기에 올랐으며 1993년 제1서기에 오른다. 3년을 공청단에서 근무했던 후진타오와 달리 리커창은 16년동안 공청단에서 근무했고 그 중 5년은 공청단 제1서기를 지냈다. 때문에 공청단 지도부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리커창의 인맥으로 분류된다.

◆2011년 상무위원 4인 배출?

정치국위원중에는 상무위원을 제외한 16명 중 5명이 공청단 출신 인사로 분류된다. 후진타오에 앞서 공청단 제1서기를 지낸 왕자오궈(王兆國)는 현재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고, 신장(新疆)위구루자치구 서기를 지냈던 왕러취안(王樂泉) 현 정치사법위원회 부서기는 공청단 산둥(山東)성 부서기 출신이다. 왕자궈와 왕러취안은 내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나머지 공청단 출신 정치국위원 3인은 모두 차기 상무위원으로의 승진이 유력시되고 있다. 우선 리위안차오(李源潮) 중앙조직부장은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를 지냈다. 중앙조직부장은 공산당의 인사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당내 영향력이 크다. 리위안차오와 같은 시기에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를 지냈던 류옌둥(劉延東) 현 국무위원도 차기 상무위원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후 주석의 신임이 두터운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는 과거 공청단 안후이(安徽)성 부서기를 지냈다. 이들이 리커창과 함께 모두 상무위원에 진입한다면 9명중 4명을 공청단 출신으로 채우는 셈이다.

◆2022년 중국장악 노려

후진타오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에 올랐을 때는 아직 공청단파가 정치세력으로 기반을 다지지 못했었다. 오히려 장쩌민 전 주석의 영향력이 강했었다. 하지만 향후 공청단파 출신의 정치인이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다면 이는 명실상부 공청단파의 '중국 장악'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현재 국무원 각부처 부장및 부부장급(장차관급)에서 공청단파가 두터운 인재풀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기 공산당 총서기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으로 내정된 상태고 리커창 부총리가 총리로서 시진핑과 함께 2012년부터 10년간 중국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청단파는 차기 총서기로 리커창 부총리를 지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2022년 선출될 차차기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는 공청단파 정치인이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공청단파는 차차기 총서기 후보로 세명의 강력한 카드를 지니고 있다. 리커창으로부터 공청단 제1서기를 이어받은 저우창(周强) 후난(湖南)성 서기, 저우창의 제1서기 후임자인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서기, 그리고 후춘화의 후임자로 현재 공청단 제1서기를 맡고 있는 루하오(陸昊)가 그들이다. 이들 세명은 모두 1960년대에 출생했으며 공청단 제1서기를 지냈으며 40대의 나이에 장관급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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