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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용성 특파원) 리훙중(李鴻忠) 중국 후베이(湖北)성 서기는 지난 6월 한중우호주간 행사가 열린 우한에서 이규형 주중 한국대사 및 한국기업들과 면담을 갖고 한국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리훙중 서기는 한국산업단지 조성을 지원하기 위해 전담팀을 만들어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리 서기는 “후베이성은 앞으로도 계속 두자릿수 성장을 할 것이라며 지금이 한국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처럼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게도 투자유치에 적극적이다. 국제적이면서 개방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999년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그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계열로 분류되며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과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 장더장(張德江) 부총리 등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10월에 열릴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주요지방 서기나 부총리로의 영전이 기대되고 있다.
1956년 8월 산둥(山東)성 창러(昌樂)에서 출생한 리훙중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문화대혁명에 휘말려 랴오닝성 선양 생산대에서 노동을 했다. 이 곳에서 그는 치안주임, 단지부서기 등을 역임했고 이듬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문혁이 종료되고 대학입시가 부활하자 그는 시험을 통해 지린대학 역사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1982년 문혁기간동안 노동을 했던 선양(瀋陽)시의 서기 리톄잉(李鐵映)의 비서로 관료생활을 시작한다. 리톄잉은 이후 정치국 위원까지 올라가며, 퇴직 후 사회과학원 원장을 맡아 중국의 전자산업육성에 매진했던 인물이다.
1985년 전자공업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리톄잉은 리훙중을 베이징으로 불러올려 전자공업부의 비서직을 맡긴다. 당시 리훙중의 상사는 황리만(黃麗滿) 판공청 부주임이었다. 이후 황리만은 판공청 주임까지 올라갔고 리훙중은 부주임이 됐다. 리톄잉의 비서로 6년을 일한 리훙중은 1988년 리톄잉의 배려로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시 부시장으로 내려가게 된다.
4년후인 1992년 황리만이 선전(深圳)시 부비서장으로 내려왔고, 1995년 선선지 부서기를 거쳤으며, 리창춘 현 정치국 상무위원이 광둥성 서기로 내려왔던 1998년에 광둥성 부서기에 올라선다. 리창춘은 하얼빈공대를, 황리만은 하얼빈군사공정학원을 같은 시기에 다녔던 인연이 있기도 하다.
황리만이 광둥성 부서기에 올라서면서 리훙중의 벼슬길도 탄력을 받게 된다. 2000년에 후이저우시 서기가 됐고, 2001년 광둥성 부성장에 올랐다. 그가 주로 맡았던 분야는 금융과 경제개발 분야였다. 리훙중은 2003년에는 황리만이 서기로 있던 선전의 부서기로 옮겨갔다. 그리고 2005년에 황리만으로부터 선전시 서기직을 물려받게 된다.
2007년 17대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은 중부굴기 전략을 내세웠고, 동부연안지역에서 훌륭한 성과를 냈던 정치인을 내륙지역으로 발령보내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리훙중은 2007년 후베이 성장에 임명된다.
무난한 길을 걸어가던 그에게 2010년 악재가 겹치게 된다. 그 해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후베이성장으로서 언론의 비난을 한몸에 받아야 했다. 리훙중은 기자회견 도중 경화시보(京華時報)의 한 기자로부터 민감한 질문을 받자 화를 내면서 그 기자의 녹음펜을 강제로 빼앗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과 홍콩의 언론계 및 학계 인사 350여명은 언론탄압을 했다는 이유로 리훙중 성장의 사임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어 7월에는 리훙중이 비리혐의와 관련해 공산당 중앙기율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미국의 둬웨이(多維)신문사가 보도했다. 이 사이트는 믿을만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6월 비리혐의로 체포된 쉬중헝(許宗衡) 선전시장이 당국의 조사과정에서 리 성장의 비리 내용을 진술했다”고 전했다. 쉬중헝은 리훙중이 선전시 서기직을 역임할 때 발탁한 인사다. 하지만 이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0년12월 후베이성 서기에 올라서며 건재를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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