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삼국지 기행11-쓰촨성편> 1-1 1800년 고도(古都) 잠에서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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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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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의 역사에서 깨어나는 고도(古都)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새벽 12시 30분. 우리 취재팀이 탄 비행기는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 쑤앙리우(雙流)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자정이 지난 시각이었지만 공항 안은 여러 국적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로 붐볐다. 비즈니스나 관광을 목적으로, 또 어떤 사람은 유학의 부푼 꿈을 안고 쓰촨성에 첫 발을 내딛는 현장이었다.

입국 수속을 거친 후 대면한 현지 안내원은 자부심이 넘쳐나는 목소리로 “여기가 중국 서부지역에서 가장 큰 공항이다”고 소개했다.

승합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도중 차창 밖에 비친 전경을 감상하면서 이내 안내원이 던진 ‘서부 최대 공항’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그의 자랑이 무색치 않게 규모는 물론 공항은 지은지 얼마 안 된 듯 무척 깨끗했고 외관도 자못 웅장해 보였다.

인구 1000만, 1인당 GDP 3000달러의 청두는 인구 수로는 중국에서 9번째, 주민 소득으로는 7번째 도시다.

휘황한 야경,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마천루(摩天樓), 6차선 대로를 8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해 벌이는 도로 공사 현장.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서부 대개발 사업의 핵심 거점, 중국 서부지역 최대 도시인 청두의 현주소다.

쓰촨성 청두시는 중국 정부가 추진한 서부 대개발 사업의 결과로 7대 도시 중 하나로 도약했다. 청두 시내 최대 번화가로 서울 명동과 비견되는 진리(錦里) 거리 전경.


취재팀이 도착한 10월 20일은 중국 서부국제박람회가 한창 진행 중인 시기였다.

중국 정부는 고도 성장을 구가하던 지난 1980년대 후반, 동부지역으로 쏠리는 부(富)를 서부로 분산시키기 위해 서부 대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서부국제박람회는 쓰촨성을 비롯한 중국 서부지역의 발전 현황을 소개하고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교류의 장이다.

문득 청두를 방문한 본래 취지를 되새겼다.

삼국지의 영웅 유비(劉備)는 서기 214년 종친이었던 유장(劉璋)이 다스리던 익주(益州)를 차지하고 거점 도시였던 청두를 도읍으로 삼아 촉한(蜀漢)을 건국한다.

촉은 24년 만에 위(魏)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유비를 비롯한 촉나라 건국의 영웅들은 오랜 기간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촉 멸망 후 400여년이 흐른 당(唐)나라 때 국내에서는 서유기(西遊記)로 잘 알려진 현장(玄奘)법사의 여행 경로 중 한 곳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그게 전부였다. 이후 청두가 중국 역사의 중심 무대로 부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렇게 역사의 아스라한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던 청두가 새삼 각광받고 있다.

청두의 존재를 알린 게 서부 대개발 사업이었다면 청두의 새로운 미래를 열 화두는 단연 ‘삼국지’다.

짧은 휴식을 취한 뒤 이튿날 오전 청두에서 180km 가량 떨어진 광위안(廣元)시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됐다.

유비의 왼팔로 활약하다 요절한 군사 방통(龐統)의 묘(廟)와 위나라 정벌의 관문이었던 검문관(劍門關), 험준한 산세를 뚫고 촉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였던 잔도(棧道) 등 삼국지 유적을 하나로 이어주는 길이었다.

청두 외곽으로 향하는 직선 도로에 접어들었을 무렵 안내원이 문뜩 의미심장한 얘기 한 마디를 던졌다.

“이 길이 진(秦)나라 때부터 시작해 한(漢)나라 고조인 유방과 삼국 시대의 유비가 촉으로 들어오기 위해 지났던 유주로(兪州路)입니다.”

가이드가 가리킨 한 갈레 길 속에 삼국 시대 천하의 한 축을 짊어졌던 촉의 흥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리라.

중원에서 험준한 산세로 둘러싸인 촉(蜀)으로 진입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던 금우도(金牛道). 이 길을 통해 들어온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고 황제 지위에 올랐다.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는 2000년대 초반 쓰촨성을 둘러보던 중 중원 세력이 촉으로 진입해 들어왔던 촉도(蜀道)를 복원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는 위대한 역사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작업의 일환인 동시에, 촉도 복원을 통해 중국 서부 지역을 관광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려는 전략적 조치였다.

중국 정부는 제조업에 치중돼 있던 산업구조를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내륙에 위치한 쓰촨성을 문화 서비스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그 동안 방치돼 왔던 삼국지 역사 유적에 대한 개발에 나선 것이다.

취재 도중 만난 쓰촨성 여유국 관계자는 “쓰촨이야말로 삼국 시대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일한 지역”이라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쓰촨성 정부는 삼국지 유적의 관광상품화를 통해 오는 2020년까지 성내 주민 소득을 25% 가량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취재팀이 탑승한 차량이 광위안시를 향해 질주하고 있을 무렵 구름 사이로 햇살이 언뜻 비쳤다. 안내원은 5일 만에 구경하는 햇볕이라고 말했다.

쓰촨 사람들이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쓰촨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다. 거대 분지로 해를 보기 어려운 자연 환경을 빗댄 것이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햇살을 대하자 덩달아 취재팀의 기대도 부풀었다.

삼국 시대 영광을 간직한 청두가 180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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