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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과를 먹고 죽은 백설공주가 파란사과를 먹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그렸다는 '백설왕자'앞에선 션팡정. 그는 이 그림에 그린 사과를 시작으로 인물에서 식물그림 시리즈로 변하게 됐다고 했다./ 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반달눈이 된 미소를 머금고 그가 나타났다. 깜박 한국사람인줄 알았다.
스키니 청바지에 체크재킷, 나비넥타이까지 맨 그는 통통튀는 스프링처럼 탄력있어 보였다.
중국의 젊은 작가 션팡정(25), 작년 베이징에 이어 두번째 개인전을 한국에서 하기위해 날아왔다.
베이징에도 갤러리를 열고 있는 중국전문갤러리 아트사이드 이동재 사장이 몇년전부터 그를 눈여겨 본게 인연이 됐다.
이 사장은 "한창 젊은 작가지만 션팡정의 작업실에서 방대한 스케치를 보고 놀랐다"며 "하나의 작업에 수많은 밑그림과 그의 진취적인 사고와 예술을 대하는 진중한 자세에 중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무서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장샤오강 왕광위,위에민준, 쩡판즈,쩌춘야등 중국 블루칩작가들을 국내미술시장에 첫 소개한 화상이다. 이후 중국미술 붐을 타기시작했고, 이들 작가는 세계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중국전문갤러리스트 이 사장의 안목으로 한국 개인전의 행운을 거머쥔 신예작가 션 팡정은 자신감이 넘쳤다.
3일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서울에서 연 션팡정의 개인전은 인간의 욕망, 자연 죽음등 3가지 주제를 담아낸 회화 14점과 드로잉 미디어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전시 타이틀은 'Strawberry's Issue'. 하얀 배경에 딸기하나가 매달린듯 박힌 팜플릿으로는 '중국 냄새'는 커녕, 오히려 식물적이어서 낯설다.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듯 눈을 반짝이며 몸을 바짝 당겨 앉았고 다양한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다.
정치색과 시니크리얼리즘이 강했던 세계 미술계를 주름잡는 선배 미술가 세대와 작가가 속한 젊은 세대의 차이를 물었다.
“선배 세대는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고민했지만, 우리 젊은 세대는 많이 다릅니다. 솔직히 전 정치에 관심없어요. 우리세대는 개인적이고 각자의 개성이나 감수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려 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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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무거운 주제지만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내 밝고 경쾌한 느낌이 든다.
과일과 꽃들이 뒤덮인 후지산, 백합 장미 해바라기로 뒤덮인 거대한 꽃밭에서 작은 욕조에 앉아 미키마우스 양산을 쓰고 있는 남자. 우스꽝스러움도 잠시, 거대한 꽃밭은 쓰나미로 변해 집어삼킬 듯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자연앞의 무력한 인간을 모습을 풍자한 듯 했다.
또 백설공주옷을 입고 힐긋 쳐다보는 사람은 파란사과를 들고 있다. 빨간사과를 먹고 죽은 백설공주와는 다른 모습. 왕관처럼 삐죽삐죽 펑크족 머리를 한 백색얼굴의 사람은 볼수록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힘들어진다.
션팡정은 ‘빨간 사과가 아닌 햇사과를 먹고도 백설공주처럼 죽을까’라고 생각으로 그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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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된 화면처럼 영화 스틸같은 작품의 제작배경은 많은 공정을 거친다. 한번에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다.
분장팀, 사진팀,전문가그룹이 따로 똑같이 움직인다.
우선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스케치로 남기고 이를 실제 공간에 연출하고 각색한 뒤 각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해 다시 캔버스에 그리는 식이다.
작가는 “나는 움직이지 않는 화면을 연출하는 PD"라고 했다. 그는 "그릴 화면을 먼저 연출하는 것이 내가 창작을 하는 과정이며 그런 과정을 중시한다. 연출을 하면 조절도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며 "준비하는 과정 전체가 주는 자극까지 체험한다"고 했다.
작품 제작을 위해 진행하는 시간동안 시들어가는 과일과 꽃들. 그는 이러한 생명과 죽음을 경험하며 다시 화폭에 옮길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기록한다. 스러짐에 대한 아련함, 찬란한 슬픔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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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 각각 꼭지점들은 꽃, 과일 채소등으로 이어져 하나의 원을 그리는 식으로 순환된다.
"어릴적부터 밤하늘에 호기심이 많았다"는 그는 엉뚱했다. "지붕위에 누워서 여름밤의 모든 별들이 다 초콜릿으로 변하거나 혹은 채색 고무지우개로 변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과학에 관심이 있고 레오나르드 다빈치를 좋아한다는 그는 그림만 그리는 예술가가 아니라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재주를 보이고 싶다고도 했다.
그가 예술의 개념적인 사고를 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공부한 일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햇다.
노신미술학교를 다니던 3학년때인 2008년 국비장학생으로 홍익대 회화과에서 6개월간 수학했다. 그는 "이때 기술기법에만 능했던 중국대학교와 달리 예술의 개념을 중시하고 작품에 대한 토론을 하던 한국미술교육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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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를 가르키는 저울에서 백색의 얼굴을 한 무표정의 여인들을 그린 션팡정은 중국 젊은세대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배운 것에 대한 반항도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
단 한번도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삶을 생각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그림이 삶이라는 그는 외동아들로 자라 고독하다고 했고, 작품속에 그런면들이 담겨있다고 했다.
4살 때 부터 그림그리기는 재미있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에게 할머니가 “남자는 그러면 못 쓴다”며 중국 전통 인물채색화인 공필화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동화책 한권을 배껴 그릴정도로 그리기에 몰두했다.
작품은 노동집약적이고 밀도가 있다. 섬세한 모필로 매끈하게 그려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붓터치가 살아있는 듯한 붓질의 내공이 탄탄하다. 이동재 사장은 "이러한 기법은 국내 작가들에게선 볼수 없다"고 했다.
중국신예화가공모에서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력과을 확보한 그는 중국현대미술계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생각이 분명했다. 그는 "아티스트는 반드시 각자의 창작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무예인 쿵푸에서 제일 꺼리는 것이 무술이다. 일종의 겉치레다. 이는 실전에서 목숨과도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양만 멋지고 실전에는 쓸모가 없는 권법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가. 이것이 내가 앞으로의 창작활동에서 지켜내고 싶은 나의 기준이다. " 전시는 12월 4일까지. (02)7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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