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의 입구 명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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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협 입구의 전경. |
(아주경제 이낙규 기자) 황룡이 지나간 자리안가? 대지가 파이고 산이 솟는다. 깎아지를 듯한 협곡 사이로 황토 빛 강물이 흐른다. 너무도 빠르고 매섭게 흐르는 강물 사이로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이 실로 엄청나 입을 다물기 힘들다. 하지만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자연이 빚은 절경에 구멍을 뚫고 길을 낸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인간들의 아귀다툼을 대하다 대자연으로 고개를 돌리면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세삼스럽게 느껴진다.
이른 아침 ‘걸어서 삼국지 취재팀’의 차량이 광음을 울리며 도로 위를 달린다. 어느 덧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릉강의 물줄기. 취재차량은 그 물줄기를 따라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취재팀의 목적지는 명월협, ‘사기’에는 “천리의 잔도 촉한까지 통하다”고 기재되어 있다. 진혜왕이 촉나라를 멸망시키고 제갈량의 북벌 또한 이 잔도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태백도 “촉도의 그 어려움은 하늘에 오르기와도 같이 힘들다”라고 감탄하였던 그곳. 진한, 삼국시기 잔도의 웅장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있는 그곳에 취재팀 다가가고 있다.
명월협 입구 역시 한산했다. 제법 웅장한 명월협 입구 앞이지만 주차장에는 취재팀의 차량외에 차량이 몇대 없었다. 다만 저멀리 울려퍼지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명월협 입구의 적막함을 깨고 있을 뿐이었다. 안내원을 기다리며 명월협을 안내판을 바라보다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안내판에 표기된 한글 안내문구 때문이었다. 그만큼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찾는 명소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기대가 한층 더 커졌다. 안내 문구를 읽고있는데 안내원이 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 모든 길을 한몸으로 안고 있는 ‘중국교통사 박물관’
“명월협은 쓰촨성 광위안(廣元)시 성북 26km, 조천구 조천진에서 2km 떨어진 가릉강변에 위치합니다. 협곡의 길이는 4km , 강폭은 평균 100m 정도이며 수심은 5m 이상 됩니다. 당나라때 이후에는 이 곳을 조천협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서기 756년, 당의 현종은 범양절도사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자 황급히 쓰촨 지방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초가을 가릉강변의 조그만 진영에 이른 현종은 그곳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관리들의 조회를 받는데, 이때부터 그 인근의 지명에 `천자에게 조회한다` 는 뜻의 조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것입니다.”
명월협 인근지역에 조천협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유래에 대해 현지 안내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협곡 내에는 잔도, 견부도, 수로, 도로, 철도 등 옛적부터 가장 현대의 최신 교통이 모두 망라돼 있어 ‘중국교통사 박물관’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보기가 드문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안내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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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협 입구 앞에 있는 제갈량의 동상. |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취재팀을 반긴 것은 제갈량의 동상이었다. 마차에 앉아 가릉강을 바라보며 고뇌에 잠겨있는 한 제갈량의 모습 속에서 주군을 잃고 무능한 후주를 받들며 혼자 북벌을 진행하는 쓸쓸함과 고단함이 묻어나는 듯 하다.
제갈량 동상 뒤에는 웅장한 크기의 출사표가 병풍처럼 서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저에게 역적을 무찌르고 한나라를 부흥시키는 책임을 맡겨주옵소서. 그렇지만 성과가 없으면 저의 죄를 다스려 선제의 영령에게 고하옵소서. 폐하도 스스로 살피시어 정도(定道)를 자문하시고 순리에 맞는 말만 받아들이시되 선제의 유조(遺詔)를 기억하소서. 저는 폐하의 은혜를 받들게 되어 복받치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원정에 오르게 되어 표를 올리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제갈량의 눈물어린 충정과 절절한 진심이 명월협에 울려 퍼지는 듯 하다.
제갈량의 동상과 출사표 옆에는 제갈량이 발명했다는 목우(木牛)와 유마(流馬), 다연발 쇠뇌가 복원 전시되어 있었다.
안내문구에는 1700여년전, 촉나라가 북벌에 나설 당시 대군은 험준한 산과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군수품을 운송하기가 어려워 촉한의 재상인 제갈량은 목우와 류마를 발명한 후 이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병마와 군수품을 운송할 수 있게 됐다는 애기가 적혀있다. 또한 천북일대에서 계공차(독륜차)는 당시 가장 훌륭한 교통도구로 이용됐다고 쓰여있었다. 하지만 다연발 쇠뇌를 제외한 목우와 유마가 군수품 수송에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의구심이 간다. 오히려 그 형태로 봐서는 잔도를 건널때 방해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 황홀한 절경앞에 절로 나오는 감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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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부터 2km나 이어지는 명월협 잔도. |
회랑을 지나고 계단을 통해 잔도 내려가려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나도 모르게 또다시 탄성이 터져나온다. 가릉강 양쪽에는 암벽이 병풍처럼 높이 솟아 있다. 그 사이로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가릉강의 풍광은 흔히 달력에서만 보아왔던 한폭의 산수화 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동쪽으로는 고본산의 줄기인 조천령이있고, 서쪽으로는 남롱산의 줄기인 백운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웅장한 절경에 연신 감탄사를 내뿜고 있는 취재진에게 안내원이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간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잔도에 첫발을 내딘다. 잔도 곳곳에는 이곳이 촉의 땅임을 각인 시키듯 제갈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노랑색 깃발과 촉이라고 쓰여진 하얀색 깃발에 곳곳에 꼳혀 있었다.
명월협의 잔도는 2km나 이어진다. 또한 기다란 잔도의 거리만큼이나 여러가지 이야기가 잔도 곳곳에 서려있었다.
10분쯤 걸었을까 신선동(神仙洞)이라고 하는 동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이곳에서 신선이 살았다고 하여 신성동이라 불려진다고 하는데 이렇게 웅장하고 빼어난 경관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인들 신선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발길을 옮기다보니 집채만한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에는 빨간색으로 지진석(地震石)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있다. “이 바위는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 협곡 위에서 떨어진 바위입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듣는 순간 잔도 옆으로 협곡에 솟아있는 바위들이 불안하게 다가온다. 쓰촨성 대지진은 이곳 명월협에서도 어김없이 상채기를 남겼다.
커다란 바위와 협곡을 번갈아 바라본 나의 모습에서 어떤 궁금증을 눈치 챈 것일까? 안내원이 갑자기 잔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한다.
“명월협의 잔도는 낭떠러지에 구멍을 뚫고 나무대들보를 설치한 후 지면에 나무기둥을 직접 세운 후 대들보를 놓고 그 위에 목판을 펴서 길을 만든 것입니다. 구멍의 깊이는 약 75cm, 너비는 45cm이며 암벽내의 아래로 경사졌고 삽입된 나무대들보는 위로 경사졌으며, 밑부분에는 대들보를 삽입한 구멍이 있습니다. 어떤 구멍의 밑 부분의 옆선에는 작은 홈이 있는데 이는 물이 홈을 따라 흘러내려가 대들보의 밑 부분이 부식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서 사용시간을 연장시킵니다. 명월협 협곡에는 이러한 돌구멍이 약 400여개 있습니다.”
비록 지금의 잔도가 최근에 다시 복원 되었다고는 하지만 과거 400여개의 구멍을 뚫고 험한 협곡을 넘어 새롭게 길을 개척하려 했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인간의 끈기와 의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황토색으로 얼룩진 협곡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원은 이곳을 명월협 폭포라고 소개했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이곳에 황토빛 폭포수가 떨어져 내린다고 한다. 그러서 인지 명월협 폭포를 안내하는 안내판 역시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황토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 황토빛 자국이 선명한 명월협 폭포 자리를 바라보며 이토록 멋스러운 절경에 황토빛 폭포가 내리는 장관을 생각하니 흐릿한 날씨가 원망 스러웠다.
명월협 폭포를 지나 이어지는 잔도부터는 지붕이 있다. 낙석과 유수를 방지하고자 잔도에 지붕을 추가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멀리서 이 지붕이 있는 잔도를 바라볼라치면 마치 공중에 걸려있는 누각과도 같다고 하여 '비각' 또는 '운잔'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잔도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커다란 망루와 넓은 야외무대가 나온다. 관광객이 많은 주말에는 이곳에서 삼국지의 한장면을 재현한 공연이 열린다고 했으나 아쉽게도 우리 취재팀은 볼 수 없었다.
◆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명월협
잔도의 끝자락에 도착하여 잔도 위쪽으로 나있는 보도 블록을 걷어간다. 명월협 잔도가 황토빛 가릉강과 협곡의 절경이 함께 이어져 지루함을 몰랐다면 잔도 위에 새롭게 만들어진 보도블록으로는 명월협 잔도에 얽힌 이야기가 담긴 조각상이 담겨있어 재미를 더한다.
조각상과 관련해 전해져 오는 이야기중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기원전 316년 전국시기 진혜왕은 대군을 거느리고 촉나라를 점령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산길이 너무 험하여 촉나라로 진군하기 매우 어려웠다. 이에 진혜왕은 5 마리의 돌소를 만든 후 금똥을 눌 수 있다고 촉왕을 기만하였다고 한다. 촉왕은 사람들을 파견시켜 돌소를 끌어오게 하였고 진나라의 대군은 이들을 따라가서 촉나라를 멸할수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길이 지금의 금우도(金牛道)라는 것이다.
안내원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황금똥을 누고 있는 돌소의 상이 눈앞에 보인다. 안내원이 전한 이야기와 돌소 상을 바라보니 진혜왕에게 속은 촉왕이 우둔함에 실소가 머금어진다.
수많은 이야기 앍혀있는 조각상을 지나니 호랑이 아가리 모양의 협곡이 나타난다.
이 협곡의 이름은 노호취(老虎嘴)로 1936년 6월에 건설됐다. 예전의 인근 5개 성을 연결하는 도로중의 하나였으며 항일전쟁시기에는 전방과 후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군사통로 였다고 한다. 당시 사용된 인력은 10만여명에 달하는데 사망자가 수백명에 이르렀을 만큼 작업조건이 열악했다. 노호취와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 취재팀은 명월협 입구로 향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그 옛날부터 무수한 피와 땀과 생명까지 받쳐가며 이 길을 개척하고자 노력했을까. 쓰촨으로 들어가는 입구 광위안, 그리고 그 입구의 문에 해당하는 명월협. 악조건을 무릅쓰고 협곡에 구멍을 뚫고 수많은 인명을 희생해가며 만들어진 이길에 서니 길을 개척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인간들의 집념에 새삼 마음 한 구석이 숙연해 진다.
우리 취재팀은 어느새 다시 명월협 입구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마주하게된 제갈량의 동상, 제갈량은 선제의 요지를 받들어 한중의 요충지인 양평관 북벌기지를 구축한다. 그리고 이곳을 전진기지로 삼아 죽는 날까지 북벌을 단행한다. 군마 수송을 위해 반드시 지나야만 했던 명월협 잔도, 그곳에서 끝까지 출사표의 결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제갈량의 고독한 전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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