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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부자이야기] 캉스푸(康師傅)라면 웨이잉저우(魏應州)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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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12-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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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중국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먹어보았을 캉스푸의 훙샤오뉴러우몐(紅燒牛肉面, 중국 전통 육수의 소고기 탕면). 특히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기차에서 캉스푸의 컵라면은 배고픈 유학생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55.8%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 1호 라면 캉스푸의 성공신화에는 웨이잉저우 회장의 실패의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시장분석이 있다.

1954년 타이완 출신의 웨이잉저우 회장은 일찍이 부친인 웨이더(魏德)로부터 딩신요우팡(鼎新油坊)이라는 작은 콩기름 공방을 하나 물려받았다. 그는 3형제와 함께 공방을 운영하다가 사세를 확장할 기회를 맞게 된다. 1988년 중국 대륙이 타이완에 문을 열어준 것.

웨이잉저우와 형제는 중국 대륙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장을 분석했다. 그리고 기름가게에서 기름을 조금씩 덜어 사는 본토인을 겨냥해 병 포장 기름을 시장에 내놓았다. 투자자금 1억5000만타이완 달러(한화 약 56억원)를 들여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결과는 대실패. 투자자금의 절반을 잃은 웨이잉저우는 대륙을 떠나기 위해 선전(瀋<土+川>)행 열차에 무거운 몸을 실었다.

풀이 죽어 기차에 오른 웨이잉저우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가방에서 컵라면을 꺼냈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라면’을 먹으려던 순간, 갑자기 주위 승객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호기심어린 눈길로 컵라면을 바라보던 승객들 중 몇몇은 어디서 살 수 있냐며 앞다퉈 묻기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중국인에게 있어 라면은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신(新)세계의 물건이었던 것.

타이위안으로 돌아온 웨이 회장은 기름 출시의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품질은 좋을지 몰라도 비싼 값의 병 포장용 기름은 대륙인들에게 있어 사치였던 것.

웨이잉저우는 더이상 기름에 연연하지 않고 라면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는 즉시 창업컨설턴트를 찾아 조언을 받고 '맛 좋고 값이 싼' 컵라면을 생산하기로 했다. 또한 중국인 입맛에 맞는 라면을 만들기 위해 만 번이 넘는 실험을 반복했다. 드디어 1992년, 웨이잉저우는 톈진(天津)에 '캉스푸 라면' 공장을 세웠다. 홍보를 위해 당시로서는 거액인 3000만위안을 마케팅에 쏟아 붓기도 했다.

이후 라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라면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팽창했고 훙샤오뉴러우몐을 대대적으로 유행시킨 캉스푸는 업계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1995년 이후에는 라면 생산 업체에서 주스 차 케이크 등을 생산하는 종합 식품 기업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며 중국 40여개 지역에 생산기지를 갖춘 대형 기업이 되었다. 지난 11월에는 펩시콜라의 중국 사업권도 인수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철저한 시장 분석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캉스푸를 성공 반열에 올려 놓은 웨이잉저우 회장은 지난 2006년 총자산 17억달러로 포브스에 의해 타이완 부호 20위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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