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원 |
사실 최저가낙찰제를 확대 시행하면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예산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좀 더 엄밀하고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사회 비평가 존 러스킨은 가격만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세상에는 좀 더 싸게 팔기 위해 누군가가 좀 더 나쁘게 만들지 못할 물건은 거의 없다. 가격(price)만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그 누군가의 합법적인 먹잇감(lawful prey)이 된다”고 설파했다. 이어서 그는 “지나치게 많이 지불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너무 적게 지불하는 것 역시 현명하지 않다. 너무 많이 지불하면 약간의 돈을 손해 볼 뿐이지만, 너무 적게 지불하면 구입한 물건으로 하려고 했던 일들을 못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역설했다.
적게 지불하고 많이 얻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거래 균형의 법칙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최저 가격만의 주장은 오히려 당초 의도한 거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는 위험만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건설 산업에서도 이러한 이치는 예외적일 수 없다. 모든 건설 시설물은 좀 더 싸게 만들 수 있다. 수요 기관이 정한 낮은 가격을 맞추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될 수 있다. 좀 더 낮은 사양의 시방 기준을 적용하거나, 좀 더 낮은 품질의 기자재를 사용하거나, 미숙련 저가 외국 기능 인력을 투입하면 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뒤따를 것은 분명하다.
얼마 전 한 건설 관련 기관의 대표가 최저가입찰제 현장에서 낙찰률이 낮을수록 안전 재해가 많으며 값싼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의 활용은 곧 공사 부실화로 이어진다고 토로한바 있다. 적절한 작업 환경과 적정 생산 원가가 보장되지 않는 한, 고품질의 시설물 생산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의도한 최저가낙찰제의 예산 절감 효과가 실현될지도 불확실하다. 일반적으로 시설물의 생애주기 중에서 초기 건설 단계의 투입 비용 비중은 15~40% 정도에 불과하며, 시설물 준공 이후 운영 및 유지 관리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60~85%에 달한다. 시설물의 운영 및 유지 관리 단계에서의 비용 투입 효과성을 도외시한 채, 초기 건설 비용 절감에 지나친 치중은 단기적으로 예산 절감의 착시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유지 관리 비용의 증대로 인한 예산 낭비를 초래할 개연성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최저 가격이 아니라 최고 가치의 추구가 올바른 선진형 관리 목표이다. 영국, 미국, 일본과 같은 건설 선진국에서의 공공 발주기관들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최고가치 낙찰제이다. 기술과 가격을 함께 보는 종합 평가 방식이다. 건설 생산 주체에게 적정한 생산 비용을 확보해 주고, 생산 과정에서 진정한 가치가 창출되는지 검증하는 것이 전문성을 갖춘 발주기관이 담당해야 하는 몫이다. 이를 위해서 공공 시설물의 발주기관이 지혜로워야 한다. 사용자에게 진정한 가치를 확보해 주고 국가의 재정을 절약하는 길이 무엇인지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러스킨이 이미 120여년 전에 경고한 상거래의 기본 원칙이 우리 건설 산업에 던지는 의미를 되짚어 봐야한다. 가격만을 추종하다 국민 전체가 그 희생양이 되는 우를 막아야 한다. 싼 가격이라는 합법적인 미끼에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최저가낙찰제 자체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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