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싼윈은 1952년12월 산둥(山東)성 단(單)현에서 태어났다. 1968년 12월 지식청년으로 하방돼 구이저우(貴州)성 즈진(織金)현의 인민공사에서 근무했다. 성적이 뛰어났던 데다 교사들이 모두 하방된 영향으로 그는 즈진현 제1중학교에서 대리교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그는 공농병청강생 자격으로 1974년 그는 구이양(貴陽)시 사범학원 중문과에 입학했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종료됐고 그는 이듬해 구이양사범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학교에 남아 당위원회 판공실에서 근무하게 된다.
당시는 문혁이 종료된 후 각방면에서 인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정규대학생은 아예 없었으며 공농병청강생마저도 몹시 귀한 때였다. 구이저우성 조직부는 대졸자인 왕싼윈을 조직부 비서로 채용했다. 그리고 1984년 구이저우성 조직부 청년간부처 부처장으로 발탁했다. 그는 공청단에서 일한 적은 없었지만 청년간부처 부처장인 만큼 덕과 재능을 겸비한 청년일꾼들의 공급원 역할을 하던 공청단의 인사들과 가깝게 지냈다.
1998년 그는 구이저우성 부서기마저 겸임하게 되는 등 순항을 거듭한다. 그해 그는 중앙당교 정치학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3년후인 2001년 그는 중앙당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그는 쓰촨(四川)성 부서기로 이동해갔다. 직급상 수평이동이었지만 1억인구인 쓰촨성의 비중을 따진다면 사실상 영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쓰촨에서 반년여밖에 머물지 못했다. 새로운 사무실에 적응도 하기 전에 그는 같은해 10월 푸젠(福建)성 부서기로 이동해갔다. 그는 2007년 안후이성 성장으로 영전했고 2011년에 간쑤성 서기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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