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진형 기자) 2008년 5월 12일 스촨(四川)성 원촨(汶川). 지축을 흔드는 대지진의 참화가 이 곳을 덮쳤다. 사망자만 8만 명을 넘어선 최악의 참사에 일대 산업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중 중국 주류품평회 3회 수상에 빛나는 국가명주 젠난춘(劍南春)의 피해가 특히 컸다.
챠오톈밍(喬天明) 젠난춘 그룹 회장은 “술의 40%가 손실되었고 직접적인 경제손실만 10억 위안(한화 약 183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발효구덩이만은 아무런 영향을 입지 않았다”며 “만약 파괴되었다면 원래의 젠난춘을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래고 새로운 부활을 알렸다.
젠난춘은 쓰촨성 몐주(绵竹)시에서 생산된다. 지진이 일어난 원촨과 고작 60km 떨어진 거리이다. 술의 고향 쓰촨에서도 몐주의 술은 예부터 명성이 높았는데 당대(唐代)에는 창안(長安, 당의 수도)까지 ‘젠난샤오춘(劍南燒春)'의 이름이 전해져 황제에게 바치는 어주가 되기도 하였다.
월하독작(月下獨酌) 등의 시를 지어 애주가들의 영원한 선배로 존경받는 주선(酒仙) 이백(李白). 그가 몐주에서 생산되는 젠난샤오춘을 마시기 위해 자신의 모피옷을 저당잡아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解貂贖酒, 士解金貂)는 젠난춘의 오랜 역사, 명성과 함께 우리에게 해학을 전해준다. 또한 북송팔대가인 소식(蘇軾)은 젠난샤오춘을 일러 ‘3일간 술병을 열어두면 그 향이 온 마을에 가득하다(三日開甕香滿域)’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마오우젠(茅五劍)’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마오타이, 우량예와 더불어 젠난춘을 일컫는 말로서 젠난춘의 명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현대에 와서 젠난춘은 1951년 중국 정부의 주도로 최초의 현대식 생산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전통의 양조법에 최신 기술을 더하여 1958년부터 ‘젠난춘’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으며 74년 처음으로 일본, 홍콩, 마카오 등지에 수출되었다.
원촨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젠난춘은 현재 지진 전 보다 더 큰 수익을 내며 힘차게 부활하고 있다. 포장시설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생산량이 지진 전 8t에서 현재 5t으로 줄었으나 고품질 주종에 주력하는 동시에 상품군을 다양화하는 전략으로 고수익을 올리며 점차 위기를 타개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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