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육의 화기애애(畵嗜愛愛)> 한 사내의 삶 속에 끊임없이 불었던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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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1-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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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②최북, <한강조어도>

최북,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 조선 후기,  42.5×27.8cm, 국립중앙박물관

‘사계산수도’ 한 작품 더 감상하실까요?

최북(崔北:1712-1786)이 그린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입니다. 여기에서 ‘한강’은 서울에 있는 한강이 아니라 ‘추운 강’을 뜻합니다. 이 작품 역시 《사계산수도》중의 한 폭입니다.

같은 겨울 풍경을 그리는데 김유성과 최북이 대상을 선택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차분하게 눈 내린 선비집의 풍경이 김유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최북한테는 강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작가가 붓을 들 때 세상 모든 만물을 다 그릴 수는 없습니다. 마음에 가장 끌리는 대상을 그리기 마련입니다. 어떤 대상을 그렸는가를 보면 작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최북은 이 작품 외에도 여름과 겨울에 낚시질하는 그림 두 점을 더 그렸습니다. 한 가지 주제에 꽂히지 않았다면 여러 점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겠지요? 혹 주문에 의해 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한들 작가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리지 않았겠지요. 최북이 누굽니까? 스스로 ‘붓으로 빌어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아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쓴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거들먹거리는 양반이 그림을 요구하자 자신의 눈을 찔러 버리면서까지 단호하게 거절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기이한 행동과 예측할 수 없는 성격 때문에 ‘미치광이(狂生)’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금강산 구룡연에 가서는 ‘천하 명인이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며 연못에 투신하는 소동을 벌일 정도로 돌발적이었습니다. 그는 ‘호생관’ 외에도 거기재(居基齋)·삼기재(三奇齋)·성재(星齋)·기암(箕庵)·기옹(奇翁)·좌은(坐隱)·반월(半月) 등의 다양한 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의 자(字)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 ‘북(北)’을 파자(破字)하야 ‘칠칠(七七)’이라는 자를 썼습니다. ‘칠칠맞다’는 표현을 자로 사용한 것이지요. 그런가하면 ‘유용(有用)’이란 자도 썼습니다. 무엇인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기(聖器)’라는 자는 어떻습니까?

‘성스러운 그릇’이라는 뜻인데 소리만 들어서는 ‘성기(性器)’라는 단어와 혼동하기 십상입니다. 이렇게 자의식이 강하고 괴팍한 사람이었으니 아무리 주문에 의해 그림을 그렸다 해도 소재는 최북 자신이 선택했을 것입니다.

원래 <한강조어도>는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773-819)의 「강설(江雪)」이란 시의 마지막 구절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을 형상화한 ‘시의도(詩意圖)’입니다. 삿갓과 도롱이 쓴 늙은이가 외로운 배를 타고 홀로 낚시질하는데, 차디찬 강에는 눈만 내린다는 내용입니다. 최북의 마음이 꼭 그랬을까요? 고독한 사내 최북의 삶에 어지간히 세찬 강바람이 불었던 모양입니다. <미술사학자/blog.daum.net/sixgar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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