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다그룹은 건설, 부동산개발, 건자재, 의료분야에 걸쳐 16개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민영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20억달러를 넘었으며 1만2000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조 부회장은 리화이(李懷) 회장에 이어 서열2위다. 한국인이 중국 대기업에서 2인자의 위치까지 오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조 부회장의 중국사업에 대한 꿈은 대학시절부터 시작됐다. 1983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우선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사했다. 금융업에 대한 꿈이 있었다기 보다는 사업 종자돈을 마련하기위한 차원이었다. 은행을 그만두고 4년간 모은 전재산 5000만원을 털어서 1987년 우주물산이라는 무역상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그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당시는 수교전이었던 만큼 비자기간이 1개월로 제한됐었다. 홍콩과 베이징을 번갈아 오가며 중국업체들을 뚫었다. 그가 주로 취급한 품목은 나무젓가락, 삼베, 모시, 방석 등이었다. 하지만 중국업체들은 납기를 어기고 물건수령후 대금지급을 하지 않는 예가 비일비재했다. 그의 첫 도전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쓰라린 실패를 맛본 조 부회장은 대학시절 배운 맹자(孟子)의 구절을 읊으며 자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가 깍이는 육체적 고통을 주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곤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렵게 한다. 하늘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마음을 단련시켜, 능히 그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다.(天將降大任於斯人也,必先勞其心志,苦其筋骨,餓其體膚,窮乏其身行,拂亂其所爲,是故動心忍性,增益其所不能).“
1989년 사업이 망한 조 부회장은 어쩔 수 없이 드럼통을 만드는 한국의 원정제관이라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던중 1993년 원정제관이 베이징의 크리스탈생수회사를 인수하면서 조 부회장을 총경리로 발탁해 베이징에 내보냈다. 조 부회장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며 환희에 젖었다. 생수사업을 보기좋게 성공시킨 조 부회장은 그다음 사업으로 중국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 1999년 그는 현지 진출 대기업 책임자들과 함께 재중한국인회 설립을 주도했다. 조 부회장은 현재 한인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투자자문업을 하며 업계에 이름을 날리던 그에게 2007년 중국기업 옌다 그룹으로 부터 러브콜이 날아들었다. 근는 2007년 부회장으로 스카우트된 후 2011년 수석 부회장에 올랐다.
그는 현재 베이징 동쪽에 위치한 옌자오(燕郊)개발구에 건설되는 코리안타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총 투자규모 60억달러의 대규모 신도시사업이다. 주거지역, 오피스타운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는 엔터테인먼트 단지도 들어설 계획이다.
그는 ”서울타운에 건설될 예정인 한국국제학교를 중국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사관학교로 키우는 것이 소망“이라며 ”한국형 연예인을 양성하는 엔터테인먼트사와 연예인양성대학을 설립하여 인재를 배양해 내는 것도 개인적인 꿈“이라고 말했다.
◆조평규 부회장 주요약력
▲1956년 경남 통영 출생 ▲경북대학교 중문과 ▲1983년 상업은행 입사 ▲1987년 우주물산 창업 ▲1989년 원정제관 입사 ▲1993년 크리스탈생수 총경리 ▲2001년 한국상립대투자고문 대표이사 ▲2007년 옌다그룹 부회장 ▲2011년 옌다그룹 수석 부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