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에 관한 일”이라고만 밝힌 CIA 요원은 직접 만날 것을 요청했고, 이후 스키장을 찾아온 요원들은 아프가니스탄 코스트주(州)의 CIA 비밀기지에서 부인 제니퍼 매튜스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했다.
오하이오주 시더빌대학 동창인 앤더슨과 결혼한 매튜스는 1987년 워싱턴DC 인근으로 이사하면서 CIA의 정보분석 요원으로 취직했다.
우연한 기회에 당시로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오사마 빈 라덴을 담당하게 됐고, 1998년 알 카에다가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폭탄테러를 잇따라 감행하면서 ‘알 카에다 전문가’였던 그의 임무는 부각됐다.
그러나 매튜스는 2001년 9월 11일 가족들과 함께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9·11 테러’ 소식을 접한 뒤 테러 음모를 사전에 파악해 방지하지 못했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했다.
이후 런던으로 파견돼 약 5년간 영국 정보당국과의 반(反)테러 업무 조율을 담당하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그의 운명은 2009년초 알 카에다 지도자 추적 요원을 찾는 공고를 본 뒤 180도 달라졌다.
9·11 테러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던 그는 전직 CIA 요원이었던 삼촌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족을 남겨둔 채 아프간으로 향했고, 결국 같은해 말 동료 6명과 함께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특히 당시 폭탄테러는 CIA가 알 카에다 내부에 투입한 요르단 출신의 첩자 후맘 칼릴 아부 무랄 알 발라위가 저지른 것으로, 일각에서 매튜스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가족들의 고통을 더했다.
더욱이 CIA가 ‘이중간첩’ 발라위에게 너무 쉽게 속았다고 주장하는 남편 앤더슨과는 달리 부모와 삼촌은 매튜스의 아프간행(行)이 성급했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가족 불화까지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현지시간) ‘CIA 요원가족, 자살폭탄 테러로 고통스런 불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매튜스 가족의 사연을 1면에 이어 16면 전면을 할애해 소개했다.
앤더슨은 WP와의 인터뷰에서 딸과 두 아들을 가리키며 “애들은 그냥 엄마를 그리워한다”면서 “엄마가 무슨 음식을 좋아했는지 가끔 묻고, 예전에 엄마 침대에 가짜 거미를 놓아두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고 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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