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두바이유 기준)를 돌파하면 각종 에너지 대책과 함께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말 그대로 검토일뿐 정부 대책에서 유류세 인하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 최근 확인됐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큰 차를 타는 사람들의 부담까지 덜어주면서 유류세를 인하할 수 없다며 130달러를 넘더라도 유류세 인하보다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을 우선순위에 둘 것이라고 밝혔다.
유류세율을 인하해 모든 계층에 혜택이 가도록 하지 않고 자동차를 이용한 생계형 사업자 등 특정 계층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의 지원만 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단체 등 국민들의 유류세 인하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정부가 이처럼 꿈쩍하지 않는 것에는 몇가지 든든한 근거가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부가 나서서 세금을 깎아줘가며 소비를 장려하는 모양새는 좋지 않을뿐더러 탄소세 도입 등 에너지 관련 세금을 강화해야 하는 국제적 추세를 역행하기도 불편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휘발유값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46.2%로 높지만, 영국은 59.5%, 네덜란드는 58.9% 등 OECD 국가들 대부분이 우리보다 유류세 비중이 더 높다. 일본이 39.8%로 우리보다 낮지만, 유류세 인하는 에너지 소비조장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을 피하기도 어렵다.
김승래 한림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유류세를 종량세로 부과하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갈수록 세금비중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선진국들처럼 가격당 부과하는 종가세로 전환해야 한다”며 “유류세 인하는 논할 상황도 아니지만 정치적인 주장 때문에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치솟았던 2008년 정부가 리터당 80원 가량의 유류세를 인하했지만, 세금인하 이후에도 계속해서 상승하는 국제유가 때문에 1조4000억원 정도의 세수입만 줄어들었고, 국민들이 가격인하 효과를 체감하지 못했던 경험도 정부의 고민중 하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금처럼 고유가가 지속되는 시점에서 유류세율을 인하하는 것은 국민 체감효과도 없고, 세수만 축난다”며 “정치적 부담 때문에 교통세에 붙는 관세를 탄력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이 부분도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유류세를 고유가 때 인하하지 않으면 언제 인하할 수 있겠냐며 정부의 입장이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서혜 소비자시민모임 석유감시단 팀장은 “현재처럼 유가가 많이 올라가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당연히 법에 정해진 취지에 따라서 유류세의 탄력세율을 적용해 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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