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관련 제조업체인 구미 KEC에서 지난해 해고 당한 김모씨(43)는 연거푸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쉬었다. 사측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이유로 해고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비단, 김씨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난 근로자가 지난해 100만명을 넘어섰다.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상실한 근로자 중 비자발적 사유로 인한 경우가 전체의 39.6%인 13만5000명에 달한다.
이 중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뜻하는 ‘경영상 필요에 의한 퇴직’으로 직장을 잃은 근로자는 10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30% 정도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10만명을 돌파했다.
‘폐업, 도산, 공사중단’ 등 다니던 회사가 아예 사라지면서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상실한 근로자 역시 전년 대비 5.6% 증가한 21만6000명에 달했다. 또 ‘기타 회사사정에 의한 비자발적 퇴직’은 2.3% 늘어난 72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숫자는 총 104만6000명에 이른다. 계속 일을 하고 싶어도 회사가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 등을 실시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이가 100만명을 넘은 것이다.
반면 비자발적 상실자 중에서도 ‘질병이나 부상, 노령’ 등으로 인한 사람은 8만6000명으로 전년 대비 1.5% 줄었고, 계약기간 만료 및 공사종료 등에 따른 이는 93만3000명으로 6.6% 감소했다.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해 경기가 살아나지 못한 가운데 특히 건설경기가 부진에 빠지면서 폐업·도산업체가 대거 양산됐기 때문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45개 업체가 부도를 맞았고, 2467개 업체는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1025개 업체는 등록이 말소되는 등 총 3637개 전문건설업체가 1년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협회 기업평가부 관계자는 “2010년부터 비자발적 퇴직자 수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그만큼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제도가 기업 경쟁력만 강조하다보니 쌍용차와 한진중공업과 같은 부당한 정리해고사태가 빚어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 때문에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해고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근로기준법 24조 1항에 명시된‘경영상의 위기에 따른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야 하고 ‘고용유지조치’를 활용토록 유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고용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고용유지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는 등 법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유인책은 없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24조 1항을 보완할 수 있는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이 정책국장의 진단이다. 이어 그는 “경영상의 위기를 사측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다보니 힘 없는 근로자만 강제퇴직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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