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북고 3학년 때는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주도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로는 학생운동에 투신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됐다.
이후 서울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했다. 부인 설난영 씨도 이 시기에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전국금속노조 한일 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1980년에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돼 심한 고문을 당했고, 1985년에는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2년 6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김 지사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1990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중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하면서부터다. 이재오·김용태 의원 등도 이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96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대표위원 특별보좌역을 맡으면서 보수 정치권으로 ‘전향’, 현실정치에 뛰어든다.
이후 15대 때 국민회의 박지원 후보(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를 꺾고 당선된 뒤, 경기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을 했으며, 2004년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당내 대표적 개혁인사로 꼽혔다. 2006년 경기지사에 당선됐으며, 2010년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김 지사는 살아 온 이력에서 드러나 듯 서민적 이미지가 최대 강점이다. 지사로서 보여준 추진력과 풍부한 행정 경험도 다른 후보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반면 중앙정치 무대에서 멀어진 탓에 전국적인 인지도가 낮고 대중성도 부족한 편이다. 재선에 성공한 뒤 여권 내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돼 왔으나, 대선후보 지지율은 1%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4·11총선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차명진·임해규 전 의원 등 이른바 ‘김문수계’가 대거 낙선해 당내 기반이 약해졌다는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프로필◇
△경북 영천(60)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한나라당 노동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 △15·16·17대 국회의원(부천 소사) △재선 경기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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