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현철 기자=대권출마를 공식선언한 민주통합당 김영환 의원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에 참가한 혐의로 본인과 부인, 어머니까지 옥고를 치러 가족 중 3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기록됐다.
수배기간 동안 전기공사기사, 소방설비기사 등 6개 전기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전기노동자 생활하면서 노동운동에 뛰어 들기도 했다.
입학 15년 만인 198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병원을 개업해 본격적인 치의사 활동을 시작하다 1995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경기도 안산에서 15대 국회에 입성한 김 의원은 2003년 새천년민주당 분당사태 당시 대변인을 맡고 있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추미애, 조순형 의원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민주당을 떠나지 않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2001년 김대중 정부 최연소 과학기술부 장관에 임명된 뒤에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과학 전도사의 길을 걷게 된다.
짧은 정치경력에도 장관과 당 주요보직을 두루 거친 김 의원은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으로 한때 정치생명의 위기를 맞았다.
김 의원은 조순형 당시 당 대표의 탄핵소추안 발의에 동참하면서 여당과 국민들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 채 2004년 17대 총선에서 떨어졌다.
18대 총선에서는 유세 도중 “후보로는 나를 찍어도 정당은 한나라당을 지지해달라”는 말을 해 정체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다 2009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5년 만에 국회로 재입성했다.
2010년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지내면서 중소기업과 과학기술 육성에 힘써 지난해 최우수 과학기술 국회의원, 중소기업 지원 대상, 과학기술분야 의정활동 우수의원 등에 이름을 올렸던 김 의원이 이제는 대권 사냥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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