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대선까지 6개월 남은 상황에서 각 지도자들은 향후 5년간 한국을 이끌어갈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본인들의 비전과 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의 정부조직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다.
정부조직은 시대적 이념이나 가치, 관련 이해관계자, 행정자원, 정책수단 등 수많은 행위자들이 벌이는 게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불과 두 달여 동안에 향후 5년의 정부조직을 개편해 환경과 수요에 따른 필요성보다는 정치적 측면에서 결정되는 문제점이 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유능하고 작은 정부', '국민을 섬기는 작은 정부'라는 목표를 두고 2원 18부 4처 18청을 2원 15부 2처 18청으로 바꿨다. 이때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가 폐지됐는데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들 부처에 대한 부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중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폐합된 과학기술부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다시 부활했고, 최근에는 정보통신부 부활과 관련된 논의가 학계와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해양수산부도 부산을 중심으로 부활을 요구하고 있다. 부처 부활뿐만 아니라 개별 부처는 정권 말을 이용해 직제 개정을 통한 부처 조직과 공무원 인력 증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부처 내 조직 간의 기계적 통합은 이뤄졌으나 사람과 업무의 통합은 생각보다 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조직융합관리에 관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개별 부처에서는 생각보다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내부 갈등이 많은 조직은 다시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아마 통합된 부처에서 소외된 집단일수록 다시 부처 분리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은 정부 주도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이러한 대표적 기구로 과거의 경제기획원, 정보통신부 등이 있다. 1970-80년대 한국 경제의 기적은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부처가, 1990년대 이후에는 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한 ICT산업 육성이 그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러한 부처가 미래에도 한국의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심 부처가 될 수 있는가이다. 과거 경제기획원은 기획재정부로 부활돼 이번 정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처가 되었다. 지난 4년간 한국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청와대와 재정부의 역할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재정부는 대통령의 경제공약을 실현하는 부처로서 한계를 보여주었다. 70-80년대 성공을 이끈 주역이 부처를 이끌었으나 결국 과거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 정부에서 다시 한 번 보여주었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화두는 복지다. 아마 차기 정부에서도 복지모델로의 조직개편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복지모델은 국가 부도를 몰고올 수도 있다. 따라서 시장 보완 측면에서의 복지 확대를 지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현금 등의 시혜적 복지가 아닌 생산적 복지를 지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개편이 진행돼야 한다. 이러한 정부조직 설계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공존이다. 공존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 중앙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취업자와 실업자 등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분야의 조직에 대한 과감한 조정이 필요하다.
둘째, 공감이다. 공감이란 조직개편에서 정치적 이해관계, 이익집단의 측면을 최대한 줄이고 정부 기능을 최대한 반영해 분산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협업적 추진체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이기적 경쟁보다 이타적 협업을 할 수 있는 공감대가 정부조직 내에 요구된다.
끝으로 공정이다. 공정은 조직개편이 진행될 때 정말 필요한 기능에 더 많은 조직과 인력이 배치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필요한 조직인가를 객관적·합리적 판단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지난 정부 때 만들어진 조직이니까 없애자', '과거에 성공한 조직이니까 부활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논리가 차기 정부 조직개편에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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