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아주경제신문 11기 인턴기자 8명이 ‘사라진 만원을 행복’을 찾아 나선 결과, 최근 물가 급등하면서 1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었다. 그나마 요즘 같은 때에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이유로 주목받는 재래시장에서는 여전히 1만원으로 한 끼 식사는 물론, 후식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주부, 돼지고기 5900원 vs 1만800원
“아이들은 고기 반찬을 해달라고 조르는데 값은 뛰고…. 1만원으로 살 게 없네요.”
여름 과일인 수박도 1통에 1만2000원, 마늘 1접은 3만원이나 됐다. 계산대 앞에서 만난 이모(39)씨는 “뉴스에서는 물가가 안정됐다고 하는데, 막상 나와 보니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더 오른 것 같다”며 “한번 장을 보면 대략 10만원 정도 나오는데 작년에 비해 2배는 더 든다”고 푸념했다.
인근의 풍납동 전통시장. 대형마트보다는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품목이 다양했다. 돼지고기(600g) 5900원. 대형마트에서 파는 돼지고기의 반값이었다.
또 고등어(1손) 2000원, 상추 1000원 등 마트에서 파는 물건보다 정돈이 덜 됐을 뿐 신선도는 높았다. 생닭집은 초복을 앞두고 특수를 누렸다. 마트에서는 2마리에 2만3700원이었지만, 이곳에서는 1만원에 4마리를 살 수 있었다.
간식거리도 저렴했다. 빵집에서 만난 박대열(50)씨는 “백화점 가면 빵 한 봉지(4개)에 4500원인데 여기는 3개에 1000원”이라고 말했다. 그가 식빵과 카스테라, 쿠키 3봉지, 빵 3봉지를 사고 낸 돈은 1만원. 인심 좋은 빵집 사장이 1000원을 깎아줬다.
◆전통시장에서 1만원으로 데이트하기
4580원. 올해 책정된 시간 당 최저임금이다. 대학생들이 1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두 시간가량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이렇다보니 요즘 대학생들은 데이트하기에도 버겁다. 영화 2인권에 2만원, 유명 커피전문점에서 아이스커피 2잔에 1만1500원, 식사를 분식으로 대체해도 하루 데이트 비용은 5만원이나 된다.
이런 부담 때문에 대학생 커플 김경윤(26)씨와 최다연(24)씨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대학로, 명동 등에서 데이트하는 횟수를 줄였다.
대신 이들은 서울 곳곳의 전통시장을 탐방하며 데이트를 즐긴다. 김씨는 “번화가 물가는 부담스러워 시장을 찾곤 한다”며 “시장마다 제각각 다른 맛과 풍경이 있어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곳은 경기도 광명시장 한복판에 위치한 H 칼국수집. 칼국수가 2500원, 잔치국수가 1000원이다. 저렴한 가격 못지않게 뛰어난 맛도 이 가게의 인기에 한몫했다. 인근 커피집에서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시장표 커피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간식거리로는 찹쌀 도넛을 샀다. 7개에 1000원이다.
김씨와 최씨는 간간이 뮤지컬도 본다. 세종문회회관에서는 2008년부터 ‘천원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는 최씨는 “학비랑 월세를 내고 나면 항상 빠듯했는데, 데이트 비용을 나름대로 절약할 수 있다”며 1만원 데이트 코스를 추천했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1만원이면 ‘할리우드 스타일’ 연출
“이거 주세요.”
손님이 티셔츠 두 장을 들고 1만원을 쓱 건네자 1초 만에 계산이 끝났다.
지난달 리모델링을 마친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직장인 김서연(27)씨는 “리모델링 하기 전처럼 여전히 가격도 저렴하고 쾌적해져서 쇼핑하기 좋다”고 말했다.
2~4평 남짓의 작은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고, ‘무조건 오천원, 만원’ ‘교환·환불 불가’라고 붙어 있는 형광색 카드가 눈에 띈다. 값이 싸다고 질이나 스타일이 뒤처지지 않는다. 올 여름에만 벌써 세 번째 이곳을 방문했다는 조민지(여·23)씨는 “루즈한 티에 반바지, 여기에 목걸이만 하면 소위 말하는 할리우드 스타일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 상가 상인들도 ‘만원의 행복’덕을 톡톡히 누린다. 여성의류점을 운영하는 이승미(30)씨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마진은 조금 남기고 많이 파는 게 오히려 장사 잘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백화점에서는 1만원짜리 물건은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행사장에 있는 모 브랜드 티셔츠의 할인가는 5만9000원으로 1만원을 훨씬 넘는 수준이다. 백화점 행사장에서 쇼핑을 하고 있던 조민하(28)씨는 “백화점 할인이라고는 하지만 바지도 6만원대, 티셔츠도 4만~5만원대라 조금 부담 된다”며 “한두 개만 사도 10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고(高)물가 고통까지 겹쳐 서민들의 고통체감지수는 배가됐지만 나름 만원의 행복을 찾는 알뜰족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지금이 소점포 사장님들의 통큰 마케팅이 어느 때보다 소비자들에게 통(通)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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