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이 지난 금융위기 때보다는 어느정도 충격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외여건에 의해 충격의 강도를 낮춘 측면이 더 크므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대외 여건 환율 충격 '상쇄'…안정성 키워야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최근 1120원대를 기점으로 움직이는 양상이다.
LG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환율 변동성은 2008년 리먼 사태의 5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리먼 사태 때 1.76%로 세계에서 2위를 기록했던 원화 환율 변동성은 올해 0.36%까지 떨어졌다. 세계 평균인 0.42%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단기보다는 중장기 외화자금 조달을 늘리는 한편 당국에서 외환보유액 확충 등 대비책을 튼실하게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평가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 도입, 외환건전성 부담금 시행 등 자본 유출입 완화정책을 도입한 것도 시장의 체력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지난달 현재 외환보유액은 3168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은 45.3%를 기록했으며, 총외채에서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33.8%다. 두 수치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졌던 2008년 9월 말 79.1%, 51.9%였음을 감안하면 대폭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높아진 건전성 등에 힘입어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3사가 모두 이달 들어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등 호재도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국 국채(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68.7bp까지 떨어지며 중국과 일본을 제치는 등 한국시장의 안정성이 상승했음을 보였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 신용등급이 올라가고 한국의 국채 및 우량 회사채에 수요가 몰리는 등 환율 상승 요인과 더불어, 유럽 재정위기 상황이나 수출 둔화 같은 실물경제 지표가 불안요인으로 맞물리면서 환율의 변동폭을 좁히는 측면이 있다"면서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건강해진 편이나 아직까지 국내 금융시장이 탄탄하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장단기금리 역전 '비정상'…리스크 주의해야
국채 시장에서 요즘 자주 들리는 말은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다.
27일 현재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79%를 기록했다. 지난 7월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하락한 이후 국고채 3년물은 지속적으로 2.80~90%대를 오르내리며 기준금리(연 3.00%)를 밑돌고 있다.
최근 첫선을 보인 국채 30년물 첫 거래일이던 지난 11일 연 3.02%로 20년물(3.04%)보다 낮았다.
통상 채권금리는 만기가 길면 금리가 높다. 장기 국채 금리가 낮아진 것은 향후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갈 것이라는 우려에서 출발한다. 점차 금리가 낮아져 투자수익률을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탓에 금리가 낮아진 것이다.
여기에 대외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면서 국채 수요가 몰린 점, 금리 차익을 노린 해외자본 유입, 추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등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정례회의 당시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에 대해 정상적인 금리 경로를 통한 통화정책의 효과를 저해하고, 금융기관 여수신 금리 등에 미치는 효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한 바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채금리 변동성은 금융위기 당시 1.52%에서 올해 0.57%로 축소됐다. 42개 비교국가 평균이 1.36%임을 감안하면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변동성은 줄었으나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과 더불어 가계부채 등 금리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산적해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국채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은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실물지표 상황과 시장과의 괴리 등을 감안하면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피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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