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음에도 영훈국제중 입시비리, 서울 학생인권조례 갈등, 서울시의회와의 예산 다툼, 역사교과서 채택 후 철회 등 굵직한 교육 현안들에 직면하는 등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학자에서 현장의 우두머리로 변신한 이 기간, 문 교육감은 "참모형인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지금 자리가 어색하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만, 줄곧 지휘해온 '행복교육'이 막 뿌리 내릴 시점이 다가오자 놓기 아쉽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동안 지지해준 많은 분들을 믿고 소신껏 할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힌 문 교육감은 "앞으로도 소신껏 하겠다"며 남은 임기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지난 1년1개월간의 소회는.
"당선하자마자 지금까지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취임 일성으로 학교 현장에 일주일에 한두 번 꼭 다니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134곳을 다녔습니다. 열심히 다닌다고 했는데도 전체 학교의 10%밖에 못다녔네요. 좀 더 많은 교사, 학부모. 학생들을 만나서 진득히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데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와 트러블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시보다 시의회와의 관계가 문제죠. 의회에 아무래도 야당이 70% 정도로 압도적이다 보니 여러 문제에서 전임 교육감의 정책인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문제에 대해 원안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올해도 전년도 예산만큼 돼야 한다는 건데, 작년과 올해는 예산규모 등 상황이 다릅니다. 전체 예산이 줄어들게 되면 각자 일부분을 삭감해야 하는데 시의원들은 '전임 교육감 정책이니 깎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학생인권조례 문제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교사 인권은 어떻게 하나.
"그렇습니다. 학생인권조례 그 자체는 학생인권 보장 차원에서 만든 것이니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인권 침해의 80~90%가 학생끼리 일어나는데,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학생 인권을 교사들이 침해하는 부분에 주로 맞춰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조례에 '교사의 학생 소지품 조사 금지' 같은 항목이 있습니다. 학생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물건, 혹은 안전을 해치는 물건 소지 여부를 점검하는 문제는 인권침해가 아닌데 말이죠. 이래서 저희가 개정해야 되겠다는 건 학생끼리의 인권문제가 더 크다는 것, 이 부분을 선생님이 지켜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생활지도권을 보장하는 부분을 강화해서 개정하려고 시안을 내놨습니다."
-사교육 문제가 서울에서 유난히 심한데.
"사교육의 흐름은 우리나라 문화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자녀를 과거 급제시키는 교육이 지금까지 이어져 주류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이죠. 요즘 들어서도 출세하고 성공하는 유일한 수단을 교육으로 두고 있어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학교 교육만 갖고는 힘들다고 생각해 사교육을 시킵니다. 조선시대에 서당 다니면서도 독선생 둔 것과 똑같은 문화입니다. 지금도 잘하면 잘할수록 더 시키고. 못하면 못하는대로 시키고, 이러니까 사교육이 만연하게 된 거죠. 학부모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행복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공부 못한다고 꿈도 희망도 없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럼 입시제도 바뀌는 문제로는 해결 안 되는 것 아닌가.
"입시제도를 바꿔서 사교육이 줄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70년대 중반까지 일본·대만·한국이 거의 똑같이 대다수가 인문계 학생으로, 일류대학을 목표로 사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대만은 소득 1만 달러를 넘기면서 고졸도 취직이 잘되다 보니 진학률이 떨어졌습니다. 현재도 30~40%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여건이 좋아지니 더 심해지고,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0여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상고 출신이니 앞으로 실업계가 활성화될 것으로 믿었는데 오히려 실업계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2~3년 동안 마이스터고가 생기면서 진학률이 다소 줄었습니다. 사교육도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문화풍토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제도를 바꾼다는 말이 나오는데.
"교육감은 직선제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임명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정치권력자가 임명하게 되면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중립성을 지키기 힘들어집니다. '러닝메이트' 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생색내게 돼 있습니다. 그나마 직선제를 거친 교육감이 버티고 있으니까 이번 시의회 예산안 문제에서 알 수 있듯 반대의견을 낼 수 있었고, 영훈국제중 비리 당시 많은 여론이었던 '학교를 없애자'는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버스 노선이 잘못됐다'와 '버스가 사고 났다'는 다른 문제 아닙니까. 학교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비리가 잘못이었던 건데 '없애자'는 쪽으로 의견이 쏠렸음에도, 학생 300명이 다니는 학교를 쉽게 없앤다는 건 교육감으로서 허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소신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게 직선제 덕분입니다. 부작용이 나왔다고 폐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럼 이번 선거에 안 나올 것인지.
"숙고 중이고, 2~3개월 정도 후 결정할 겁니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수십억원의 선거비용도 큰 부담이 되는데, 지난 선거에서 무리한 만큼 또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히 후회도 됩니다. 법 자체가 야만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주위에서 출마 권유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이렇게까지 시끄러울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저는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검인정을 바꿔 시각이 다르게 쓰게끔 했고, 선택권 역시 학교 고유 권한으로 맡겼으면 자율과정을 봐줘야 하는데, 지금은 검정체계 자체가 무시되는 상황입니다. 다들 교문 앞에 몰려가서 어떤 교과서는 '죽어도 안 된다'고 몰아붙여 채택이 취소되는 건 검인정체제 자체 의미가 없습니다. 자유경쟁시장에 8개 상품이 진입한 문제와 같다고 봅니다. 교육이 너무 정치적인 문제가 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같은데, 전문가 수준에 맡기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남은 임기에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는 게 있다면.
"지난 1년간 행복교육이란 이름 아래 교육정책을 주도해오며 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먼저 심어주는 것을 1차적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100명 중 5명인데, 나머지 95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걸 바꿔보자', '꿈과 희망을 잘 심어줘서 스스로 움직이게 하자'고 했는데 이제 조금씩 움직이는 게 느껴집니다. '중1 진로탐색제' 시작과 함께 많은 아이들이 꿈을 갖게 됐습니다. 그동안 어느 교육현장을 가도 '공부 이야기'만 나왔는데, 이제는 서울 어느 학교를 가도 '꿈과 끼'를 간판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학교에 대한 화두와 컬러를 바꿨는데, 앞으로도 더 해나가고 싶습니다.”
대담=양규현 정치경제부 부국장
정리=한병규 기자 bk23@ /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