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초대석] '인맥 황제'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남을 배려하는 자세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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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3-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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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미국서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따 국제적 나눔 실천도 펼쳐

77세에 충무아트홀 사장을 맡은 이종덕 사장은 팔순이 된 올해 다시 임기가 연장됐다. 그가 부임하자마자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예그린워드를 제정하는등 충무아트홀을 뮤지컬특화극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중구청장이 90도 각도로 절을 했다. "그런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아버님 처럼 모시겠습니다. 단 1년만이라도 맡아주십시오. 부탁입니다."

2010년, 그가 임기 2년인 성남아트센터 사장을 2회 연임하며 6년간 재직했던 성남아트센터를 여한없이 내려놓았던 때였다.
이제 공연장 CEO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길을 찾기 위해 재단법인 '나눔의 문화'를 만들 계획에 들떠 있던 와중이었다.

  77세의 그가 사양하는 뜻을 밝혀도 중구청장은 물러서지않았다. 일면식도 없던 중구청장은 변호사 출신이고 민주당 소속이었다. 성남아트센터를 떠나면서 "공직을 완전히 떠난다"고 밝힌 상태여서 난감했다. 하지만 중구청장의 열의를 매정하게 무시할순 없었다. 그렇게 2011년 충무아트홀 CEO를 맡았다. 임기 3년을 다 채우고 은퇴하려고 했는데 올해초 다시 임기가 연장됐다.

'공연계 대부', '예술행정의 귀신', '인맥의 황제'로 불리는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80)이다. 국내 문화예술분야는 물론이고 간첩도 알 정도로 자타공인 무한대의 마당발을 자랑한다.

 1963년 문화공보부 문화과에서 20년동안 공무원을 한후 예술행정가로 변신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 88서울예술단 단장, 서울 예술단 이사장을 역임한후 1995년 예술의전당에서 시작된 'CEO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첫 민선 사장(1999~2002), 성남아트센터(2004~2010)에서 지금의 충무아트홀까지 승승장구다. CEO직함외에도 문화예술계 이름난 단체의 '장'자리는 모두 거쳤다. 전국문예회관 연합회 창립 초대회장(1996),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제 3회 제주 세계델픽대회 조직위원장, 제 1회 서울 뮤지컬 페스티벌 조직위원장, KBS교향악단 이사장까지 맡고 있다.

100세 시대라지만 부침이 많은 문화예술계에서 '현장 CEO'로 모시는 그의 능력이 궁금했다.
인복이 많은 걸까.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 교수처럼 늙지않고 400년을 살아온 (외계)인물일까.

 충무아트홀 집무실에서 이종덕 사장을 만났다. 악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새 명함이라며 두 장의 명함을 건넸다. 하나는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 초빙교수라고 적혀있었고, 다른 한장은 국제 로터리(ROTARY)명함이었다.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였다.

 "이 명함은 최근에 만든 거다. 지난 3월1일 미국 아틀란타에서 9일간 세미나에 참석한 후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를 땄다. 로타리하면 나이먹고 사교상 만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착각이다. 정말 봉사하는 곳이다. 그냥 봉사도 아니고 몇백억이상 투입되는 봉사활동을 벌인다. 이번엔 세계 소아마비 퇴치운동 마무리 단계에 있다."

13시간을 미국으로 날아가 세계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조직에 가입한 것은 그가 문화사업못지않게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 1974년 성 라자로 마을과 처음 인연을 맺은이후 40여년동안 후원회 돕기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이종덕 사장=△1935년 일본 오사카 생 △경복중ㆍ고등학교 △연세대 사학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수료,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CEO PI전략과정 수료,, 단국대 명예박사 △광화문문화포럼 창설 운영위원장, 유니버설 발레단 자문위원,낭만파클럽 창립 회장, 문화와여가학회 감사,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상훈=보국훈장, 국민훈장, 옥관문화훈장, 보관문화훈장, 루마니아 문화상 한국발레협회 디아길레프상, ‘자랑스러운 연세인 상’수상 등.


- 직함이 많다. 진짜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술인을 뒤에서 모르게 도와주는 예술행정가다. 배우가 앞광대라면 무대뒤쪽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배우를 돕는 사람들은 뒷광대다. 그런면에서 나는 항상 외롭다."

-'외롭다'니 무슨 뜻인가. 의외다.
"배우는 무대에서 화려하다. 내 고민 이상으로 앞마당에서 빛을 낼때 한편으로 고독해진다. 그 사람이 잘되니 만나기가 어렵다. 나를 필요로 하지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럴때 고독하다. 나이도 먹고 그러니 내 모든게 서서히 사라져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주변엔 사람이 많다. '내가 왕년에~' 시리즈처럼 말로만 유명한게 아니다. 그의 존재는 지난 1월 그의 자전에세이 '공연의 탄생' 출판기념회에서 증명됐다. 박인자 숙명여대교수, KBS교향악단 박인건 사장, 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 김승업 부산 영화의전당 대표 등이 마련한 이 출판기념회에는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유진룡문화체육부장관,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나경원 전 국회의원, 배우 손숙 신성일 문희 박정자, 이해인 수녀, 안숙선 명창 소리꾼 장사익,지휘자 정명훈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 등 국내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 500여명이 그를 위해 모여 화제였다.

◆'조센징'- '쪽빠리' 왕따..중학교때 부터 유도배워
대한민국 문화마당발로 대세지만 그에게 '흑역사'도 있다. 파란 핏줄이 보이는 하얀손은 쭈글쭈글해도 남자손 치고는 작고 고왔다. 반전이다. 아직도 떡 벌어진 어깨가 있는 그는 어릴적 주먹깨나 쓰는 운동선수였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에선 '조센징' 소리로 자랐다. 이후 9살때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쪽빠리'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이유였다. 특히 솜털이 많은 어린 그를 동물 취급하면서까지 무시하고 괴롭혔다. 왕따를 당했다.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유도를 배웠지. 유도를 배우니 간이 커지는 것 같더라고. 대학에 가서는 레슬링을 하면서 극장에서 시합도 하곤 했어."

 주먹쓰던 대학생들끼리 몰려다니자 정치깡패 소굴에도 들어갔다. 당시는 이정재파와 유지광파가 있던 정치깡패가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주먹들과 어울려 패싸움을 하고 쇠파이에 맞아 이마 한쪽이 음푹 들어갔다. 지나온 삶은 어떤식으로든 흔적을 남긴다. "머리가 많을땐 몰랐는데, 지금은 머리가 빠져서 상처가 보여."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공무원 시작, 50년간 예술경영 CEO
 어린시절처럼 그의 인생은 늘 두갈래길에 서게했다. 1961년부터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2년정도 근무했을 무렵, 제 3공화국 수립과 함께 민정이양으로 군사정권의 최고기관이던 국가재건 최고회의는 해체됐다. 공보부로 발령이 났고 '영화과'를 지망했지만 '문화과'에 뿌리를 박았다. "알고보니 영화과는 화려한 만큼 명암이 극명했다.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는 분야라 뇌물이 오가는 탓에 공무원 비리문제로 담당자가 자주 바뀌곤 했다. "그때 내가 영화과를 갔으면 그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을테지…."

 ​공무원봉직시절 복지부동과 정면대결했다. 요식업소의 외국인 공연 허가, 외국 콩쿠르 참가를 막던 해외여행에 두달씩 걸리던 신원조회 등 민원 하나에 몇 달씩 걸리던 일도 그가 맡으면 일사천리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규제개혁, 아주 잘하는 거다. 공무원때부터 나는 '곧 바로 실천'하는게 원칙이었어. 놓고가라는 말은 안해준다는 말이거든."  '문화계 해결사'로 불리던 그가 '인맥 황제'로 등극한 이유다.

  지금까지 50년간 '예술경영 CEO' 로 일하며 지나온 자리마다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동숭로 마로니에 공연도 198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로 옮긴 그의 아이디어로 조성됐고, 예술의전당 사장 시절, 소외된 지방문화계를 위해 전국문예회관을 창립했다. 당시는 국가지원라는 것도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연간 200억 예산을 운용할 만큼 영향력 있는 기관으로 커졌다.

 이 사장은 "지금 (지방)예술정책이 슬럼프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지방 공연장은 3분의 2가 공무원이다. 시도 관내의 공연장을 임기중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는 인사들도 적지않다. 20~30년전부터 전국 시도지사가 임명하는 관련법안을 바꾸어야 한다는 법안이 정책입안자들의 관심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공연장은 원칙적으로 100% 민영화를 해야한다."

 "중앙정부도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아야한다"고도 강조했다. 지금은 정부가 아예 직접 나서서 문제라고도 했다. "지원을 하는 문화예술위가 사업을 하더라. 예컨대, 작년 30억원을 뮤지컬 협회에서 지원, 3억을 받아 창작 뮤지컬쪽에 줬는데 이번에는 자기네(문화예술위)가 직접 한다고 해서 뮤지컬협회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거꾸로 가고 있다."

 최근 충무아트홀이 35억을 투입해 개막한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호평이라고 하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 공연중인데 찬물을 끼얹는것 같지만 무엇을 보여주려고 끌어가는 모양새"라고 했다. "우선 작품도 좋아야하지만 시간을 끌어서 차도 못잡고 발동동하는 관객들이 있는데 그게 참 안타까워" (프랑켄슈타인은 오후 8시에 시작해 160분 공연한다.)

  매사 창조와 도전을 즐기는 그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배려'라고 했다. " 나 아닌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남을 배려할수 있는 자세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

 팔순까지 초빙받는 삶.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것 같냐고 물었다. 
"어딜가도 상대편을 존중하는게 철칙이다. 무능하면 좋아할수도…. 내가 좀 어눌해보이지 않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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