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회복세, 세월호 참사 겹쳐 금리 '발목' 잡아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은 대내외 경제여건상 금리를 변경할만한 유인이 없다는 데 있다. 낮은 수준의 국내 경기 회복세, 미국과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한 대외경제 불확실성 등이 섞여있는 경제 상황은 지난달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문 간 불균형은 있으나 거시지표상으로 경기는 회복세라고 본다"면서도 "회복세는 분명하지만 완만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9.0% 늘어 양호한 수준을 유지했다. 소비자물가는 전년동기보다 1.5% 상승해 여전히 한은의 물가안정목표 범위(2.5~3.5%)를 밑돌았다.
지표만 놓고 봐도 흐름은 개선되는 추세이나 수준 자체는 높지 않다. 금리를 올리기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게다가 세월호 사고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민간소비 악화에 따라 회복세가 더뎌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연구원은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2분기에만 민간소비가 둔화된다고 가정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08%포인트가 떨어진다고 전날 추정했다.
이날 정부는 긴급 민생대책회의를 열어 세월호 사고 이후 경제상황 점검과 내수 회복을 위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심리 위축이 단기에 끝날 가능성과 장기로 갈 가능성을 모두 상정해서 지켜보고 있다"면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보였으므로 내수가 과도하게 위축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져볼 만 하다"고 말했다. 또한 소비심리 위축이 단기에 그친다면 경제 회복세의 큰 흐름을 바꾸진 않을 것이라고도 이 총재는 내다봤다.
◇ 이 총재 "단기적 환율 급변동, 바람직하지 않아"
최근 급락세를 보이는 환율도 통화정책 변경을 고민케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달러 약세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은 한 달새 1050원선에서 1020원선까지 떨어졌다. 견조하던 수출 성장세도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원화 강세에 대해 이 총재는 "단기간에 가격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면 쏠림현상이 생길 수 있다"면서 "원화 절상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수출에 악영향을 미쳐 경기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과거와는 좀 다르지 않겠는가"라며 선을 그은 뒤 "원화 절상이 실질 구매력을 높여서 부진한 내수를 살리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며 환율의 양면성을 언급했다.
이밖에 미국의 경제지표 둔화와 우크라이나 및 중국 등의 경기둔화 우려, 엔저 등 대외 하방리스크 등 대외 여건도 금리를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운 요인이다.
앞서 이 총재는 "회복세와 지금의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방향 자체는 인하로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라면서도 "6개월 후에 금리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 2~3달 전에는 시그널(신호)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깜짝 변동은 없다는 의중을 시사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이 금리 정상화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 총재는 "2.50%인 지금의 금리 수준은 분명히 경기 회복을 어느 정도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올해 4%, 내년 4.2%의 성장률을 제시했는데 이처럼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전제한다면 적어도 기준금리의 방향 설정은 인상이 타당하다는 뜻이었지 바로 인상을 논의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정부는 이날 내놓은 긴급민생대책의 일환으로 한은의 금융중개지원대출(옛 총액한도대출)의 여유한도 2조9000억원을 조기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여유한도의 대부분은 지난해 신설된 기술형 창업지원한도(3조원)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부문간 미 소진된 부분이 있으므로 필요하다면 총 12조원 한도 범위 내에서 프로그램 간 한도를 조정할 수 있다"면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건 한도 증액이 아니라 운용을 하겠다는 것이므로 신중히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주요 국가들도 금리를 묶는 모양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은 각각 기준금리를 0.25%와 0.5%로 동결했다. 앞서 호주 중앙은행과 인도네시아 역시 각각 기준금리를 2.5%와 7.5%로 동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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