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평온함 겉모습 속에 멈춰버린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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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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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를 일주일 앞둔 지난 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마련한 노란 리본 조형물 앞에 음식이 놓여 있다. [진도 팽목항=유대길 기자 dbeorlf123@]

 

어요'라는 글귀가 써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일주일 앞둔 지난 9일 오전,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노란 리본 조형물 앞에 음식이 놓여있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장봉현 기자=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295명이 숨지고 9명은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있다.

지난 9일 찾은 진도 팽목항. 세월호 참사 이후 슬픔의 항구로 바뀐 팽목항이 가까워지자 도로변 가로수에 나붙은 노란 리본이 사람들을 맞는다.  색색의 봄꽃이 어우러진 진도의 산과 들은 1년 전의 참혹한 비극과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자원봉사자, 희생자 가족들이 뒤섞여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팽목이라는 이름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간 듯 보였다.

그러나 한쪽에 남아 있는 희생자 가족 대기소와 팽목항에 걸린 추모 깃발들이 바닷바람에 삭아 찢기는 등 쓸쓸한 모습을 보고서야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팽목항에는 실종자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과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노란 리본이 100m 남짓의 방파제 난간에 가득 묶여 있다. 입구엔 아직도 바닷속에 남겨진 9명의 이름과 사진이 새겨진 깃발이 걸려 있다.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그리워하는 애처로운 글귀와 4월 16일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는 비에 젖었는지 눈물에 젖었는지 점점 빛이 바래간다.

사고 해역을 향해 차려진 제단에는 아이들이 즐겨 먹던 요구르트, 과자, 음료수, 초콜릿, 바나나 등이 정성스레 놓여 있다. 바닷속 실종자들이 조금이라도 덜 춥길 바라는 마음으로 짠 손뜨개 옷과 묵주, 액세서리가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1년 전쯤 수색활동 등으로 선박 접안이 통제됐던 팽목항에는 정부 구조선을 대신해 인근 섬을 오가는 작은 차도선이 무심히 오가고 있다. 인근 섬 주민들이 배 시간을 기다리느라 서성일 뿐 인적이 드물다.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권재근씨의 아들 혁규군의 똘망똘망한 얼굴이 새겨진 깃발을 가리키며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있다. 천주교 장흥성당 신도 30여명은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안하고 올 때마다 가슴으로 삭이고 또 삭였던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며 유가족들을 향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방파제 맞은편 팽목항 희생자 분향소에는 소연이 아버지 김진철씨(57)가 혼자 분향소를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소연이를 4살 때부터 홀로 키웠다던 김씨는 딸을 잃은 절망감에 죽음의 문턱을 밟겠다고 몸부림치다 여러 번 119구급차 신세를 졌단다.

"소연이는 제게 큰 버팀목이자 희망이었어요. 국어 교사가 꿈인 소연이는 반에서 1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어요. 소연이는 '아빠, 우리 친구들이 나보다 공부를 다 못해서 교사 되는 거 문제 없겠어. 빨리 교사 돼서 아빠 모실게'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며 아이와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소연이 장례를 치르고 오로지 죽겠다는 생각에 깡소주를 의식을 잃을 정도로 마시고 길바닥에 쓰러지곤 했지만 깨고 나면 119 구급대가 병원, 집으로 데려다 줬더군요"라며 당시의 절망감을 설명했다.

김씨의 스마트폰 바탕화면에는 소연이의 드레스 입은 어린 시절 사진이 깔려 있다. 소연이 생전 사진들을 보여주며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팽목항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는 2학년 각 반 학생들 이름과 천진한 웃음이 담긴 영정이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아직도 영정을 대신하고 있는 글들이다. 9명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애절함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팽목항 분향소를 찾았다는 김순석씨(65·부산)는 "대한민국이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인지 묻고 싶다"며 "어린 생명들이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났는지, 사고 원인 규명은 물론 정부의 대처와 대책도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지난해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렀던 진도실내체육관. 이곳 역시 세월호와 관련된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시간 속에 잠긴 기억들은 좀처럼 잊히지 않고 있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큰 피해를 입은 진도 주민들 역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말이면 관광버스로 붐볐던 거리는 텅 비었고, 최상품으로 인정받던 멸치와 미역, 다시마와 톳 등 청정해역에서 나는 특산품 거래는 끊겼다.

특히 진도군 경제를 지탱해 주던 관광 분야는 여전히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진도군에 따르면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지역을 찾은 관광객은 17만2467명(유료관광객)이다. 이는 2013년 같은 기간(4~12월) 관광객 30만 9939명의 55% 수준이다. 

지역에서 피부로 느끼는 피해규모는 더 크다. 진도읍 문화식당 주인은 "진도는 관광객을 상대로 먹고 살았었는데, 사고 이전에는 산악회 버스 등 관광객들로 북적였으나 이제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 이전 성업하던 낚시 집 대부분도 폐업 상태에 놓였다. 굳게 자물쇠를 잠그고 영업을 중단한 상점도 보였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도 상당수다. 팽목항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금도 어린 학생들이 앞바다에 수장됐다는 생각에 악몽을 꾸거나 눈물과 우울 증세를 보이고 아무 일도 못하는 주민들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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