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힐튼 루트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저서인 '자본과 공모'에서 한국을 아시아 선진국으로 칭했다. 특히 1960~1970년대 경제발전 과정을 개발도상국의 '모범 사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같은 대학 특임석좌교수인 여현덕 교수와 지난달 2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창조경제포럼' 직후 한 자리에 마주앉았다. 대담을 통해 이들은 1960~197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과 새마을운동을 통한 시민사회의 변화,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진정한 리더십, '위+아래' 결합에서 출발…'새마을 운동' 대표적 사례
루트 교수는 이날 홍문종(새누리당)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 주최·아주뉴스코퍼레이션(아주경제) 주관으로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창조경제포럼'에 참석해, 70년대 전후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창조경제 추진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정부와 민간의 중간 단계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여 교수와의 대담에서 그가 언급한 대표적 사례가 '새마을운동'이다. 정부의 지도와 마을 단위의 적극성이 결합한 새마을운동이 주요 매개체가 되어, 19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는 경제발전을 뒷받침했다는 설명이다. 여성의 사회 참여와 민주주의 방식의 마을총회를 활용한 점 등도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요소였다고 평가했다.
루트 교수는 "당시 권위주의적이고 상명하달(to-down) 방식으로만 보였던 박정희 정권이 마을단위에서는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를 활용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위로부터의 지도와 효율성 추구 방식이 아래로부터의(bottom-up) 자발성과 주민 아이디어 형성이 결합되면서 시너지가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여 교수도 이에 공감했다. 그는 "변화의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 관점에서 보자면, 아래로부터의 동기유발과 참여가 위로부터의 계획과 지원, 그리고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영향력이 결합될 때 비로소 리더십 효과를 보이는 것"이라며, "위로부터(to-down) 계몽이나 지도가 아래로부터(bottom-up)의 참여와 열망이 결합될 때 진정한 리더십의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당시 새마을 운동을 위해 부녀회를 활용하거나, 남성과 여성을 한 명씩 마을 지도자로 나란히 선출한 점에 주목했다.
여 교수는 이와 관련해 부녀회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절미저축운동'을 사례로 들었다. 끼니 때마다 일정량의 쌀을 별도로 모은 뒤, 일정량이 모이면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도왔던 운동이다. 이렇게 모은 자금은 마을 공동취사장이나 교량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 쓰거나, 아이들 교육을 위한 장학금 등으로 쓰도록 했다.
그는 이를 가리켜 "저개발국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감동스토리"라며 "세계의 개발경험을 살펴보면, 여성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나라는 대체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한국은 커다란 예외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루트 교수는 "오랜 유교문화 전통을 고려하면 1970년대 여성을 리더십 반열에 올리고 근대화를 추진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면서 "특히 여성들을 인정하지 않던 당시에 각 마을마다 새마을 여성 지도자들을 과반수 선발했다는 점은 가히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1970년대 여성의 역할은 아래로부터 참여 민주주의 발현에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거부감이 많은 여성들의 참여를 마을총회에서 승인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마을을 대표하지만 보수적인 이장이 상대적으로 젊고 교육수준이 높은 새마을 지도자들을 마을총회에서 승인해, 최소한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구조를 뜻한다.
이들은 정부가 '규율 및 상벌'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자발적으로 가계와 마을의 소득증대에 나서도록 하는 점도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 강력한 리더십, '다양성' 끌어안아야
과거와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에는 시민사회가 미성숙한 단계였고 지금보다 구조가 덜 복잡한만큼 리더십을 발휘하기 좀더 수월한 환경이었다는 얘기다.
힐튼 루트 교수는 "지도자가 처한 환경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국은 자원과 자본이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었고 북한공산주의 위협이 컸다"면서 "오랜 식민지와 전쟁으로 의욕을 잃고 좌절하는 국민들 가운데서 함께 해보자는 공감대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대개 다른 개도국은 의료, 기초교육, 인프라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 공업을 추진하고,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했다"면서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한국발전의 기초를 닦았고, 다른 나라의 개발경험과는 전략을 달리 했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주민들 스스로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협동정신을 발휘한 사례들이 많은 것은, 뛰어난 코디네이션(조직화)과 협상의 산물"이라며 "마을의 변화를 추진하는 소 지도자들이 자기 희생을 보여주었거나 조직화가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여 교수는 "그와 같은 민초들과 시민사회의 희생적인 노력과 열정이 분출되어야 국가 리더십은 힘을 얻을 수 있다"면서 "리더와 팔로우가 만나고, 팔로우가 리더로 변화할 때 진정한 변화와 발전이 있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루트 교수는 과거 리더십이 극대화될 수 있었던 배경, 독특하고 창의적이었던 모델들을 활용했던 창의력과 다양성을 오늘날에 적용해야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목표달성과 창의력 증진의 좋은 요소"라며 "다양성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때때로 창조와 혁신은 단절적이며, 창조적 파괴는 기존의 관행과는 획기적으로 단절하고 나아갈 때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포용의 국면과 창조적 단절의 국면을 잘 관찰해야한다"고 덧붙였다.
[프로필] 힐튼 루트
미국 재무부 개발금융 수석 고문
미국 밀레니엄 챌린지 코퍼레이션(Millenium Challenge Corporation) 공동창립
현(現) 런던 킹스칼리지 초빙교수
현(現) 영국 경제문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수석 초빙연구원
현(現) 미국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프로필] 여현덕
연세대학교 박사(비교정부론)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리더십 개발 석사학위 이수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콜로라도주립대 초빙교수
스위스 다보스포럼 수석자문역
현(現) 미국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석좌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