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피해자 손해 보거나 왕따되는 상황 근절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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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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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년 동안 한 차례도 전화 끊이지 않아 안타까워"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이 마포에 위치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희망의 공간인 상담소에서 아주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국지은 기자 = "우리 상담소에 하루 평균적으로 십 여통의 피해자 전화가 걸려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숫자이죠. 중요한 건 1991년 처음 우리상담소가 문을 연 뒤에 단 하루도 전화벨이 울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55) 소장은 "한편으로 어렵게 전화를 준 생존자들의 용기에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의 삶을 지지하고 경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 약 25㎡(7.5평)으로 시작해 25년만인 작년 9월 처음 새 단장을 마쳤다. 좁은 공간에서 선보인 상담소가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 건물로 거듭나기까지는 수 만명이 만들어낸 기금이 바탕됐다. 여기에는 공병을 주운 돈으로 기부금을 낸 이도 있었다.

이미경 소장은 "그간 도움만 받았는데 이제 도움을 주고 싶다는 한 피해자의 따뜻한 마음처럼 벽돌 한장 한장에는 소망이 녹아 있다. 이곳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희망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이 요즘 가장 관심을 보이는 현안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올바른 정의다. 무자비한 강간범만이 성폭력 범죄자라고 여겨지는 분위기에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는 "성폭력 가해자들을 '괴물'이라고 여기는데 사실 그들이 괴물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한다.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85%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데 친족이나 친구로 알고 지냈던 그들이 과연 괴물이었던 사람인가"라며 "세간에 알려지는 엄청난 사건들만이 성폭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길거리에서 이뤄지는 불쾌한 신체 접촉이나 여성의 신체, 옷차림 등을 성적 농담으로 여기는 행위도 성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길거리 괴롭힘 방지를 위한 '동의하고 하는 행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4년 장기 프로젝트로 일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성폭력을 방지하고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성적 행위가 폭력임을 알리는 사회인식 전환이 그 취지다.

이미경 소장은 "길거리 성폭력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행해지는 2차 피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실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고 고소해도 수사나 보도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받는다"고 호소했다. 현재 수사 등의 절차 때 재차 성폭력에 노출되는 2차 피해는 신고건수 중 무려 4건 중 1건(25%)에 이른다.

그는 "'즐겨놓고서' '도망갔어야지' 등의 발언은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의료과정이나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도 피해자의 배려가 무척 적은 편"이라며 "피해자가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사회로부터 왕따가 되는 상황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당한 여성의 권리를 말할 뿐인데 '극단적이다', '피곤하다' 등의 불편한 시선을 내비치는 경우가 있죠. 기존의 것을 바꾸려는 시도에는 무조건 반대편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대척점에는 분명 남성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여성들도 존재할 거예요."

본인의 일에 이토록 열정을 쏟는 이유를 묻자 "내가 얻는 건 물질적인 게 아니다. 그보다 더한 기쁨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 소장은 "비정부기구는 '사회의 맥박'이라고 배웠다. 내가 노력한 만큼 사회가 올바르게 변하고 힘 없는 이들이 스스로 다시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며 "수 많은 감동의 순간이 나를 이끌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가 제기된 후 법안이 만들어지고 실질적으로 실효성이 발휘되기까지 끝까지 목소리를 내는 게 우리의 일"이라며 "나 역시 나보다 열악한 사람들에게 어떤 힘을 행사하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한다"고 술회했다.

이미경 소장은 '명명화'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성폭력, 성희롱 등의 범죄가 명명되는 건 우리가 뭔가 불편했던 것을 확고히 정의하게 한다. 이것이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다"라며 "양성평등이란 단어도 성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므로 성평등으로 다시 불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변화가 필요한 여러 사항 가운데 성폭력 가해자에 행해지는 화학적 거세와 관련해 우려를 표했다. 피해자에 대한 진정어린 사죄가 결여된 처벌이라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전자발찌 착용 역시 진정성 여부에 의문점을 나타냈다.

그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그들의 진정한 사과이다.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인터넷 음란사이트 '소라넷'에 관해서는 "남녀가 친밀했던 시기의 관계를 이용해 그때 찍었던 사진을 올리거나 강간을 중계하는 엽기적인 행각은 입시위주 교육 등 경쟁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배경이 될지 모른다"며 "어렸을 적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배움이 부족한 탓"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고의 가치가 돈이나 외모 등으로 여겨지고 이에 의해 등급이 매겨지는 건 남을 이해하는 감수성이 사실상 없게 길러지는 환경을 제공한다"며 "인권의 가치가 경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쳐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미경 소장은 "어렸을 때의 부족한 적성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 역시도 성에 대한 올바른 생각이 자리잡도록 유년시절부터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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