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던 지난 겨울 고희(古稀)를 막 넘긴 한 고령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주위를 지나는 40대 안팎 중년층들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동(冬)장군의 기세에 옷깃을 절로 세웠지만, 이 어르신은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바로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이하 선사연)를 이끌고 있는 조휘갑 이사장(72)이다. 우리사회의 시스템과 의식을 개선하는데 몸소 현장에서 실천 중인 것이다.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2013년부터 3년 가까이 공을 들이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한다.
조 이사장은 3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마친 뒤 대학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 나섰고, 이제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사회전반의 전문가들과 함께 집단지성 공유에 힘쓴다. 지식을 나누는 방법은 다수 회원들에게 글을 배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국가·사회적 특정 이슈에 대해 세미나 및 토론회를 열거나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조 이사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져 업무여건이 절대 화려하지 않지만 열의 만큼은 무척이나 뜨겁다. 20여 명의 지정 필진들은 학계, 경제계, 교육계 등 과거 우리사회를 이끌던 인물들로 구성됐다.
20일 5평 남짓만 공간에서 만난 조휘갑 이사장은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사회를 비롯해 교육·정치·경제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와 경륜이 담긴 말들을 1시간 넘게 풀어냈다. 그럼에도 전혀 지친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국가나 사회 문제에서 합의도출 과정이 미흡해 발생되는 극단적 갈등 구조는 나라의 장래를 어렵게 한다"면서 "각계 관계자들이 연구 및 토론으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 국민합의를 선도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 시민단체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설립 취지와 목적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참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발전을 선도해야 할 제도가 오히려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제도의 미흡함이 발전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규정이 없는가 하면, 진작 없어져야 할 규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의 원인이 되며,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규제를 우회하는데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
선사연은 2009년 기획재정부의 인가를 받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시스템과 의식을 개선하는데 도움되는 일을 하는 시민단체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기반의 선진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회원들의 칼럼을 인터넷에 실어 세대 간 격차를 좁히고 바림직한 인터넷 문화형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살기 좋은 선진사회를 이루기 위해선 사회시스템과 시민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며, 그동안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
■ 여당 의원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 건의안'을 발의했는데
"로또 교육감 더는 안된다. 교육감 직선제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교육을 받을 권리'는 심각하게 훼손됐고,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은 오히려 무너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높은데도 불구하고 지자체가 교육 투자에는 소극적이다. 현행 제도는 초·중·고 교육을 지방자치단체와 무관하게 시도 교육위원회가 관장하게 돼 있다. 지자체는 교육에 예산 등을 지원할 수는 있으나 책임과 권한은 없다.
예를 들어 시도에서 도로국장을 선출할 때 선거를 통해 이뤄진다면 어떻겠는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급자 입장에서 생각을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지방자치와 교육자치가 우리나라처럼 엄격하게 분리된 경우는 별로 없다. 직선제로 인한 각종 폐해 때문에 유럽국가와 일본은 교육감 임명제로 시행 중이다.
교육감은 시·도지사가 도의회의 동의 뒤 임명하는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정당공천을 받는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것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에서 정치인인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상할 것이 없다. 시·도 교육감만 정당 공천을 배제한다고 정책이념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 교육부-전교조 '4·16 교과서'를 놓고 또다시 충돌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차원에서 계기수업이 활용되면서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 2007년부터 전교조는 계기수업안을 본격적으로 기획·배포하기 시작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의 주요 이슈였던 비정규직법, 한미 FTA,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학생들을 의식화하는 도구로 계기수업이 이용되고 있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전교조가 계기수업용으로 제작한 세월호 참사 2주기 '4·16 교과서'를 학교 수업에 활용하자는 방안에 대해 교육부가 '교육자료 부적합' 결정을 내렸지만, 전교조는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개인적으로 교육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4·16 교과서'만큼은 교육부 방침에 동의한다. 교육의 주체는 국가다.
교육의 목적은 첫째 공동체의 유지발전에 있다. 둘째는 국민들이 잘살기 위한 노하우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 어떠한 국가도 공동체의 유지발전에 목적을 두지 않으면 쇠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반대에도 불구 왜곡·편향된 '4.16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방침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 사회전반에 '안전불감증' 여전… 근본적인 대책 마련 시급한데
"우리나라는 잘못을 하면 당사자를 반성시키지 않고, 모두 조상 탓으로 돌리는 게 큰 문제다. 현장을 먼저 개선한 뒤에 조상 탓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잘못한 사람에게 반성을 시키지 않아 우리사회에 여전히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사건이 일어나면 격렬하게 반응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잊어버리는 한국인의 특성에도 일부 문제가 된다.
앞서 세월호 참사는 직업윤리 붕괴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고 발생이나 구조 부실은 모두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 책임자들에게 민·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재판결과에 따라 책임을 질 것이다. 재발방지대책은 각 부문별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과학적인 원인조사와 모든 문제점을 조목조목 밝혀내는 조사를 거쳐 수립한다.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이 끼어들어 오로지 정치적으로 책임질 이를 찾는데 온힘을 쏟고 있다. 장관이 사표를 내면 다음엔 대통령 책임이라고 한다. 현장의 관리 감독과 확인점검 업무는 대부분 일선 소관이다. 거의 모든 일이 실무선에서 이뤄진다."
■ "역사교육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라고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
"공동체 정신은 헌법정신에서 비롯된다. 역사 교육의 목적은 올바른 역사의식과 국가관을 갖게 해 국가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넘어 국가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 지배에 의한 역사 왜곡과 남북의 이념적 편향에 따른 역사 왜곡까지 겹쳐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건국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일방적으로 깎아내리며 아직도 '북한의 6.25 남침'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천안함 미군 잠수함 충돌설' 등 황당한 주장으로 대한민국 흠집 내기에 몰두한다. 이런 게 바로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날조다.
이념이나 정치적 견해에 따른 선입관을 바탕으로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역사적 사실의 해석이나 평가를 꿰맞춘다면 그것은 역사 조작이며 역사에 대한 죄악이다. 이런 식으로 교과서가 잘못 집필되면 학생들은 우리나라를 경시하고, 지금의 발전상을 고마워할 줄 모르게 될 것이 뻔하다. 역사 교육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조휘갑 이사장은?
△1944년 충청남도 청양 △청양농고 △고려대학교 △미국 밴더빌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순천향대 경제학 명예박사 △경제기획원 △통계청 과장·국장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상임위원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원장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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