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관심은 변화를 불러온다.”
함태호 오뚜기 창업자는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대할 것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2007년 발간된 그의 경영어록 제목이기도 하다.
1930년 함경남도 원산시에서 태어난 함 창업자는 40세가 되던 1969년 5월 풍림상사를 창업해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인스턴트 카레를 선보였다. 2년 후인 1971년에는 풍림식품공업으로 이름을 바꾸며 토마토 케첩을 출시했고 이듬해에는 마요네즈를 대한민국에 처음 소개했다. 1973년 오뚜기식품공업에 이어 1980년 오뚜기식품으로 사명을 바꿨다.
오뚜기의 대표상품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중 국민들에 강한 인상을 준 것이 레트로트 제품(건조식품류) ‘3분 카레’다. 1981년 4월 출시된 3분 카레는 출시 첫해 400만개를 웃도는 판매를 기록했으며 이후 3분 짜장 등 ‘3분 요리’란 브랜드가 시리즈로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함 창업자를 가리켜 ‘고집의 승리’를 이룩한 주인공이라고 평한다. 이는 외제상표만 들여오면 장사가 된다는 한국 풍토에서 이를 극구 지양하고 순수한 우리 상표로만 시장 개척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직원들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한국 조미식품의 선두주자라는 긍지를 갖고 오직 정직한 제품만을 만들어 우리의 제품에 책임을 다하자”고 역설했다.
1985년 정부의 수입자유화 정책으로 국내 식품시장을 외국에 개방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입자유화에 대해 우려하며 대책 마련에 급급했지만, 함 창업자는 이것이 오뚜기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히려 우리 국민들에게 품질에 대한 확실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면서 “이미 오뚜기는 제품의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고 정정당당하게 평가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오뚜기는 한국 토종 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다국적 기업과 맞서 ‘승리’를 거뒀다. 다국적 기업인 미국의 CPC인터내셔널(베스트푸드 마요네스 생산)과 세계 최대 케첩 회사인 미국의 하인즈사가 1980년에 국내에 진출, 10년 넘게 오뚜기와 전쟁을 치렀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함 창업자는 “우리 시장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싸웠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함 창업자는 평생을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식품 한 길만을 고집했다. 방만한 경영보다는 잘 할 수 있는 ‘하나’에만 매진해 신뢰를 쌓아나갔다. 그 결과, 오뚜기는 현재 연 매출 2조원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함 창업자는 제품 개발(R&D)과 생산시설 투자에는 주저없이 거액을 내놓지만 번듯한 건물 한 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창립 40주년을 맞은 2009년에서야 현재의 서울 대치동 오뚜기센터를 매입했을 정도다. “설비투자에 힘써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라”고 강조하는 그는 건물이나 재테크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대풍산단로에 소재한 오뚜기 대풍공장에는 3㎞ 바깥 거리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는 가로 10.5m, 세로 7m의 대형 태극기가 지상 59.5m 높이의 게양대에 실려 펄럭이고 있다. 창립 46주년을 맞은 지난해 3월 10일 대풍공장 4동 건물 신축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달게 됐다. 오뚜기는 매달 초 본사 강당, 전국 공장, 영업지점에서 열리는 조회 때마다 애국가를 1~4절까지 부른다. “국가가 있어야 회사도 존재할 수 있다”는 함 창업자의 소신과 의지에 따라 1969년 창립 때부터 시작돼 회사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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