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이 모자챙을 올렸다가 내렸다. 뒤이어 박성현을 따라 수많은 갤러리들이 자신이 쓰고 있는 모자챙을 다시 올렸다가 내렸다. 그들이 쓴 검은 모자에는 ‘SERI’의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 한국 여자골프의 ‘위대한 개척자’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향한 감동적인 경의의 표시였다.
박세리는 13일 인천 스카이72 골프 앤 리조트 오션코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1라운드를 마친 뒤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채를 잡은 뒤 27년 만이다.
이날 오전 1번홀(파4)에서 마지막 티샷을 날린 박세리는 18번홀(파5)에서 파 퍼트를 성공시킨 뒤 홀에서 볼을 꺼내 높게 치켜들어 팬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내 박세리는 동료들과 포옹을 나누며 감정이 복받쳐 올라 굵은 눈물을 쏟았다. 순간 필드는 선수들의 울음바다로 물들었다. ‘세리 키즈’ 전인지도 박세리와 깊은 포옹을 나눈 뒤 펑펑 울며 떠나는 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박인비 유소연 등도 포옹했다.
이날 은퇴식 현장을 찾은 각계 인사들과 한 명씩 포옹을 마친 박세리는 애써 눈물을 닦으며 “눈물이 많이 안 날 줄 알았는데 많이 나더라. 이제 실감이 난다. 이렇게 축복을 받으면서 은퇴를 하게 돼 정말 기쁘다. 그동안 정말 행복했고, 난 운이 좋았던 사람이었다”고 감격적인 소감을 전했다. 이어 “18번홀 티 박스에 오른 뒤 혼자 울컥해 계속 울었던 것 같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은퇴식을 한 것 같다. 우승했을 때만큼 행복했던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중학교 2학년 때 선수생활을 시작한 박세리는 일찍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은 뒤 1996년 프로로 전향했다. 그해 박세리는 상금왕을 차지하며 한국 무대를 평정한 뒤 1997년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 수석 합격으로 미국 진출에 나섰다.
199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박세리는 역사상 최초로 첫 우승과 두 번째 우승을 메이저대회(LPGA 챔피언십·US여자오픈)에서 거두며 화려하게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LPGA 투어 신인상에 이어 AP통신 올해의 여자 선수에 선정됐고, 2003년 최저타수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박세리는 메이저대회 5승을 포함해 LPGA 투어 통산 25승, KLPGA 투어 14승(아마추어 6승) 금자탑을 세웠다.
박세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감동’의 대명사였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워터 해저드에 맨발로 들어가 샷을 날리는 투혼의 장면은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했던 골프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고, 박세리를 꿈꾼 ‘세리 키즈’는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 세계 최강의 여자 골프 선수들로 성장했다.
“박세리가 티에 오르자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때 내가 사진을 그만 찍어 달라고 요청해 한 사진 기자가 대표로 갤러리를 향해 사진 찍기를 멈춰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은 그 순간마저 사진에 담고 있었다. 그때 느꼈다. 박세리는 단순한 골프선수가 아닌 진정한 글로벌 스타였다.”
마이크 완 LPGA 회장이 박세리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떠올린 6년 전 받은 가장 감명 깊은 기억은 그의 방에 아직도 걸려 있는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역선수로 마지막 라운딩에 나서기 전, 박세리는 그 어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고, 대회장에 도착해 드라이빙 레인지로 먼저 가 몸을 풀었다. 연습 그린에서는 퍼트 연습을 했다. 필드 위의 박세리는 마지막까지 박세리였다.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대한민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 당신을 영원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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