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2016년 대한민국은 총체적인 개혁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경제 체질을 바꿔 미래신성장산업 동력을 추동하기 위한 다양한 법제도 정비 뿐 아니라 재벌개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민주화, 금융개혁, 기업 구조조정 등 경제개혁이 가장 시급한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가장 필수적이다.
정치개혁은 개혁의 주체를 정비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왜곡돼 왔던 정치구조와 제도를 새로운 환경변화에 맞게 근본적으로 조정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팽배해있다. 한국 정치의 특수성이자 오랜 병폐인 지역주의 문제, 리더십의 부재, 이념과 진영 논리에 따른 계파․파벌 정치, 잘못된 정당․선거제도와 정치자금 제도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빠르게 변화되는 세상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의사결정, 의제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무책임, 이것이 지금 우리 정치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정치가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를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아울러 87년 이후 민주주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선 개헌이 필수적이지만,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개편으로만 매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헌만능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정당 개혁 =
정당개혁은 정당 제도를 보스정당에서 당원정당으로, 이익정당에서 정책정당으로 바꾸어 공당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한국의 정당들은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는 정치지도자, 즉 ‘보스’ 중심의 조직으로 운영돼왔고, 이들 정치지도자들의 선택에 따라 이합집산이 되풀이되고 합당과 분당이 반복되면서 정책적 차별성을 갖는 제도화된 정당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특히 여당과 제1야당의 권력 쟁취 싸움으로 ‘양당제’가 고착화되면서 이들이 거의 모든 정치과정과 선거과정을 독점하고 있다.
어떤 정당도 지금과 같이 다양한 신념과 이해관계를 모두 대변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포괄하겠다는 순간에 일체성과 통합성을 깨어지고 국민적 신뢰도 깨어진다. 이런 점에서 양당제라는 독과점 구조는 깨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다양한 신념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여러 개의 정당이 싸움이 아닌 경쟁을 통해 필요한 협력이나 연합을 해 나가는 것이 정당의 기능과 정책 역량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다당제 속에서 책임성이 담보된 양당제를 구현하는 한 방법은 국무총리를 여당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선출하게 하는 것이다. 책임총리제로 인해 여당의 책임성이 높아지게 되고, 내각제에 가까운 체제가 되면서 정당들 간 정책 경쟁이 활발해질 수 있다.
정당 내부적으로는 디지털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정당으로 재정비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발달은 직접민주주의의 장으로서 선거와 정당의 의미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대의정치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비를 내는 실질적인 책임당원을 모집하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을 감안할 때 지구당 부활 등 ‘대중 조직형 정당’을 고민하기보다, 미디어나 인터넷 선거운동 시대에 적응하고, 정책 개발에 치중하는 지지자 중심의 ‘선거전문가 정당’의 실질화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밖에 ▲상향식 후보추천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 ▲저비용, 고효율의 당내 경선제도 확립 ▲비례대표 공천의 민주적 규정 ▲비민주적 공천에 대한 처벌 강화 ▲비례대표 50%, 지역구 30% 공천 의무화로 실질적인 여성할당제의 도입 등도 개혁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 선거제도 =
정치개혁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문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큰 문제점으로 승자독식구조와 이로 인한 민심 왜곡이 꼽힌다. 정치권은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고 다양한 계층과 지역을 대변할 수 있도록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백가쟁명식 방안을 쏟아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선 선거구제 개혁과 관련해선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온다. 중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 아래 사표가 되어 버린 정당 표가 살아나게 돼 다당제 가 가능하게 되고, 특히 지역주의의 기반을 부수거나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 방식으로는 17개 광역시도별 정당 득표 비율을 따지는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쪽이 선호되고 있다.
독일식의 경우 지역(란트)별 정당투표 결과 득표율 5% 이상 혹은 지역구 당선자 3인 이상 정당은 득표 비율만큼 의석을 나눠 갖는다. 다양한 정책과 계급별 이해를 추구하는 정당이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회 진출이 가능한 구조로, 한국 정치권 안팎에서도 도입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는 제도다.
특히 정치 참여와 선거운동에 대해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과 활동이 가능한 방향으로 전면적인 정치관계법의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정치학회(회장 강원택)는 지난 10월 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 청원서를 제출했다.
주요 내용은 △선거일 5년 전까지 선거구 획정을 완료해 현직 의원의 자의적 개입을 방지 △여성 후보 30% 공천, 권고조항에서 의무조항으로 개정 △정치 자금 모금 내역 및 사용 내역의 투명한 공개 및 감사 △사전 선거 운동 금지 폐지 △'기간 제한 없이' 유권자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 보장 △지구당 부활 △정당 설립 요건 완화 △선거연령 18세로 하향 △비례대표후보 선정 시 민주성 강화 (대의원 대회에서의 추인 등 절차 강화) 등이다.
◆ 국회 개혁 =
20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20대 국회 초반에 국회 개혁 작업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의 1개 법안당 평균 처리기간은 517일, 법안처리율도 50%를 채 넘지 못했다.
식물 국회'·'불임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고비용·저효율'의 낙인이 찍혔던 19대 국회의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회운영 시스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가 심의를 지연시키거나 장외투쟁 등으로 입법 활동을 하지 않으면 행정부는 꼼짝을 하지 못한다. 국정 전체가 마비된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적어도 국회의 개원 및 본회의와 상임위 개의 자체가 여야의 협상사항이나 쟁점이 되면 안 된다"며 "본회의 일정과 상임위 일정을 미리 특정해서 국회를 예측 가능하고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입 30여년이 된 국감 제도의 비효율성도 지적된다. 올해 피감기관은 691개다. 30명 안팎의 각 상임위 위원들이 20일 동안 이들 기관들을 감사한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로 흐를 공산이 크다.
19대 국회 의장 직속 정치쇄신자문위원회는 각 상임위별로 매년 9월 10월에 실시하는 국감을 1주일 단위로 끊어 2~4회 나누어 실시하거나 국정조사를 강화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상임위원회에 기관별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국감을 내실 있게 진행하거나 상임위별 청문회 활성화를 전제로 상시국감 체제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있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국회개혁자문위원회는 중요 안건의 심사뿐만 아니라 소관 현안의 조사를 위한 경우에도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결국 국회를 정책지향적으로 바꾸려면 분권화된 상임위를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국회 개혁의 시작이다. 그러나 19대 당시 국회의장 직속 국회개혁자문위가 내놓은 국회운영개선 권고 사항 19건 가운데 20대 국회에서 실제 국회법으로 발의된 건은 국회의원 수당 투명화를 위한 법과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데드라인 불발시 가결 처리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 등 단 2건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일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도가 아닌 관행 등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지방 분권 강화 =
중앙정부와 정당, 국회 중심의 정치를 바꾸려면 실질적이고 확고한 지방분권이 확대․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 교육, 문화 등의 수도권 집중과 수도권과 비수도권, 비수도권 간의 불균형이 심각한 실정이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치입법권은 국가의 법률에 따라 엄격히 통제받고 있고, 독립된 인사권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또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8:2로 열악한 재정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이 많다. 저출산․고령화로 지방자치에서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정치․법학 전문가들은 자치입법권 확대를 위해 분권형 헌법 개정이 필요하며, 자치조직권 확대를 위해 가장 먼저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간의 관계가 재설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고 침체된 지방에 성장동력을 불어넣어 국가 균형발전을 통한 미래 선진 통일 한국 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치재정권 확대를 위해 국세와 지방세의 체계조정, 지방재정조정제도 개선, 지방재정법 개정, 지방재정에서의 주민참여 강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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