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임재천 기자 = 혹독한 추위가 몰아친 2009년 1월 12일.
155명의 승객을 태우고 뉴욕 라구아니아 공항을 이륙해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으로 향하던 US에어웨이 1549편이 이륙 6분 만에 철새와 충돌했다. 두 개의 엔진을 모두 잃어버린 '설리' 기장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운명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맨해튼의 고층빌딩과 충돌할 뻔 했지만 설리는 뉴욕 허드슨강으로 비상동체착륙을 시도해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는 기적을 연출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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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일어나는 재난 상황에서 리더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 사고였다.
한국 경제가 US에어웨이 1549편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 민간 연구소들은 4분기는 물론 내년 1·2분기까지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유일한 버팀목이던 수출도 2년째 내리막길이다.
바깥 사정도 간단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제 무역·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당장 다음 달에는 미국 금리 인상도 예고되어 있다. 하나같이 한국 경제에 핵폭탄급 충격을 줄 수 있는 대형 변수들이다. 조금만 삐끗해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혼란이 올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백척간두 상황에 처했지만 아쉽게도 이를 통제하고 관리할 경제 컨트롤타워(리더)는 없다.
경제부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기약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면밀한 정책보다는 유일호 부총리와 임종룡 금융위원장(부총리 내정자)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
유 부총리의 지침을 따르면서 임 내정자의 철학에도 맞춰야 한다. 혹시 임 내정자의 임명이 무산돼 유 부총리가 유임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경제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야심차게 추진하려 했던 5대 산업의 구조조정도 올스톱시켰다. 정부가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하겠다"고 밝힌 조선·철강·해운·화학·건설 등 5대 취약 산업의 구조조정은 이미 물 건너간 눈치다.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철강·화학 산업은 자체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해운·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사실상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그마나 선방했던 건설업마저 최근 주요 업체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책당국이 구조조정에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은 타이밍이다. 시기를 놓치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올해 빅3 조선업체에서만 5000명 가량의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앞으로 2~3년 후에는 더 많은 이들이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5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 성장률이 1.1%포인트 하락하고,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는 32만7000명으로 전망했다.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될 수치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 산업의 재편을 마치고,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만 ‘답보’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하루빨리 ‘미래 만들기’에 주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5대 취약업종에 대한 발 빠른 구조조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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