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훌륭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못하거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은 궁중의 여인들을 남장시켜놓고 즐기는 괴벽이 있었다. 이는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이 돼 남장한 여인이 늘어났다. 영공은 소문을 듣고 궁중밖에서 여자가 남장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유행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재상인 안영은 “전하께서는 궁중의 여인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며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禁令)을 내렸습니다.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진언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세금정책을 보면 딱 이와 같다. ‘증세없는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기간 내내 이런 기조를 이어갔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경환 경제부총리부터 유일호 부총리로 바뀐 지금도 기획재정부는 여러 논란에도 ‘증세는 없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사실도 그런가? 이 정부 들어 진행된 증세는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해도 적지 않다. 소득세 상위구간을 추가로 신설하고, 소득세 최고구간 적용대상자도 확대했다. 법인세 최저세율도 상향해 감면 혜택을 축소하고, 종합금융소득 대상자를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확대했다. 금융분야 등 비과세 감면도 축소했고, 2018년부터 종교인 과세 도입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것 뿐일까? 가장 큰 문제는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간 것이다. 담뱃값 인상에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은 사실상 ‘서민증세’‘우회증세’와 다름없다. 특히 주민세는 2∽3년에 걸쳐 2배 이상 인상하고, 자동차세도 3년에 걸쳐 100% 인상할 예정이다.
‘증세없는 복지’는 온데간데없고 서민 호주머니를 털어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등 간접세를 걷어들인 것이다.
봉급생활자들이 내는 직접세인 근로소득세도 마찬가지다. 급여에서 원천징수되는 근로소득세는 특별한 조세저항도 없고, 소득에 대해서도 유리알 보듯 투명해 ‘유리지갑’으로 불린다.
실제 근로소득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2년 19조6000억원으로 20조원을 밑돌았다. 이후 경기부진 속에도 2013년 21조9000억원으로 20조원을 넘었고, 2014년 25조4000억원, 지난해에는 27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에는 3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인 2012년과 비교해 4년새 10조8000억원(55.1%)나 급증했다.
이 결과 극심한 경기부진에도 올해 1∼9월 정부의 국세수입은 총 189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2조6000억원 증가하는 등 정부만 배부른 꼴이 됐다.
정부에 호주머니를 털린 서민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경제 질곡으로 이어진다.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를 두 바퀴로 움직인다. 그러나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브렉시트 등에 따른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하에서 수출은 당분간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수만이라도 활성화돼야 한다. 정부도 그간 다양한 정책을 내왔다.
그럼에도 내수침체는 깊어져만 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11월 소비자심리지수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현재 경기를 판단하는 CSI(현재생활형편)도 2009년 3월 이후 7년8개월만에 최저치다. 우리 경제를 현재, 미래 모두 암울한 것으로 예상한 셈이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이르고, 직장인 절반 이상이 월 2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잘못된 조세정책에 의해 서민의 세금부담만 늘어가는 상황에서 내수활성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를 개선하고 격차해소를 위해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높여 민간소비를 늘리고, 내수활성화를 통한 경기진작을 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민의 지갑을 두텁게 만드는 조세개혁은 필수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부가가치세 도입’에 대한 트라우마를 기억할지 모른다. 1997년 7월 부가세 도입후, 유신체제임에도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다. 1978년 총선에서 공화당은 득표율로 패배하는 충격을 맛본다.
이런 조세저항이 두려워 '증세를 증세로' 부르지 못하고 ‘꼼수증세’로 일관할 경우, 더 큰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2016년 11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이 처한 지금의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