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판도라’ 문정희, 이쯤 되면 고생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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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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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도라'에서 정혜 역을 열연한 배우 문정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쯤 되면 고생의 아이콘이다. 배우 문정희(40)는 늘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일종의 재난을 겪어왔다. 영화 ‘연가시’를 지나 ‘숨바꼭질’, ‘판도라’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두려움과 싸웠고,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12월 7일 개봉한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는 그런 문정희의 필모그래피에 정점을 찍는 작품이다. 역대 최고 규모의 강진과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 그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리는 사투는 역대 박정우 감독의 재난 중 가장 맹렬하고 처절하기 때문이다.

‘바람의 전설’을 시작으로 ‘쏜다’, ‘연가시’, ‘판도라’에 이르기까지. 늘 재난 같은 상황을 선물한 박정우 감독이 미울 법하건만 문정희는 여전한 애정과 신뢰를 표현하고 있었다.

영화 '판도라'에서 정혜 역을 열연한 배우 문정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4년 전에 집필한 작품인데 이렇게 딱 들어맞을 수 있을까 싶다. 감독님이 예언자 수준이다
- 감독님도 그렇게 말한다. 하하하. 사실 예상해서 만들거나 일부러 코드를 넣은 것도 아닌데 그동안 쌓아왔던 자료들과 현재 상황이 맞아떨어지게 된 것 같다. 찍을 땐 재밌게 찍었는데 개봉을 기다리는 도중 지진을 겪게 됐다. 번뜩 ‘판도라’가 생각나더라. 그때부터 많은 것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 시기에 개봉하게 된 것이 여러모로 신의 한 수 같다
- 여러 반응이 있었다. 그래도 영화를 보시면서 ‘사이다 같다’는 평을 해주셨다. 현재 시국도 답답한데 국민이 분노를 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제가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영화 자체가 가진 주제를 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더 많은 공분과 공감이 있는 것 같다
- 그런 것 같다. 다들 분출할 곳도 없으니까. 다들 평화롭게 참고 계시고 있고. 항상 영화 홍보를 하면서 느끼지만, 내용 자체가 결부된 것 같다. 이걸 배제하고 얘기하는 게 힘들다.

영화를 보면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솔직히 말해 놀랐다
- 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있어 검색도 쉽지 않다. 그건 이해가 되지만 작품을 공부하면서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원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전기를 아껴 쓰라고 하는데 왜인지는 설명하지 않지 않나. 그런 정보들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영화 '판도라'에서 정혜 역을 열연한 배우 문정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영화가 가진 메시지가 세서 며칠 동안 생각났다. 이를테면 충격과 공포였는데,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
-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가족이지 않나. 그게 우리가 추구했던 방향이기도 하다. 많은 분이 공감하고 공분하시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우리 영화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지금 상황까지 맞닥뜨리면서 다들 한 번쯤 고민해 봤던 것과 맞닥뜨린 기분일 거다.

사실 ‘연가시’ 이후에는 재난 영화를 안 찍으실 줄 알았다
- 저도 안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 감독님 왜 또…’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정혜 역할. 하하하. (김)남길이 여자친구 역할 주시지. 감독님은 원전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셨고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주제였다고 하셨다. 원자력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알자는 게 목표였던 것 같다. 친절히 설명하기도 하고 폐해에 대해 알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작은 역할이지만 여기에 힘을 싣고 싶었다. 많은 배우 역시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출연하기 힘들었겠다. 고생이 예고된 작품 아닌가
- 저는 개인적으로 감독님을 좋아한다. 그분이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도 그렇다. 거기에 재난 영화를 너무 잘 찍으신다. 기술 시사를 마치고 (박정우 감독의 성대모사로) ‘야! 어떠냐? 너무 좋지!’라고 하시더라. 저도 뿌듯해져서 감독님을 안아드렸다. 그동안 쭉 감독님을 봐왔으니까.

‘연가시’에서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도?
- ‘연가시’ 때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번 영화는 더 잘 찍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영화 '판도라'에서 정혜 역을 열연한 배우 문정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배우들이 어떤 사명감이 있는 게 느껴진다
- 대본 리딩할 때 그 마음이 느껴졌다. 사실 출연 배우들이 정말 많은데 그렇게 다 모인 날이 없었다. 큰 홀에서 리딩을 하는데 어쩜 그렇게 다들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건지. 하하하. 다들 애착을 가지고 시작한 것 같다.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들 조심스럽지만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영화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투박함으로 쭉쭉 밀고 나가는 지점이 있다. 그런 게 묵직하게 가슴을 울린 것 같다.

박정우 감독에 대한 신뢰 말고도 재난 영화를 선택하는 것에 이유가 있을까? 이 장르만의 매력이라든지
- 호러 장르를 하시는 분들은 호러가 그렇게 재밌다고 하시던데. ‘연가시’는 소재에 흥미를 느꼈고, 그 안에 사회 구조가 인상 깊었다. 그것 역시 현재의 판도와 맥락이 같다. ‘판도라’도 마찬가지고. 재난 보다는 이런 상황들 혹은 폐해를 보여주는 작품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극 중 홀로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캐릭터를 만듦에 있어서 혹은 연기를 하면서 장단점이 있었을까?
- 외로웠다. 하하하. 서울에서 온 며느리라는 설정이었는데 다들 카메라 뒤에서도 사투리를 쓰니까. ‘나도 한 번 해볼까?’ 했었는데 다들 말렸다. 그냥 중간중간 ‘삼촌처럼 될래?’ 식의 사투리를 따라 했다. 애드리브였는데 그건 반응이 좋아서 담겼다.

영화 '판도라'에서 정혜 역을 열연한 배우 문정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정혜는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 인물이지만, 그게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설명은 적은 것 같다
- 그렇다. 대사가 적어서 어머니(김영애 분)와의 갈등과 이견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다. 처음엔 순종하던 정혜가 원전 폭발에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니까. 저는 그것이 세대 간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못되게 나올 줄은 몰랐지만. 하하. 어느 정도 계산한 부분이긴 하다.

정혜와 시어머니에 대해 어떻게 해석했나?
- 가족구조가 특이하지 않나. 결혼 안 한 도련님과 시어머니와 함께 산다니. 하지만 정혜는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은 입장으로 어머니와 동질감을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정혜는 마음속으로 아이가 크면 서울로 나가거나 유학을 보내고 싶었을 거다. 참고 산다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폭발이 일어나고 어머니를 적으로 인식해버렸다고 생각했다. 이런 설명이 적은 것 같아서 감독님께 대사 좀 늘려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잘 안 됐다. 하하하.

연기로 충분히 설명됐다고 생각한다
- 그런가? 그렇다면 정말 다행인데. 남성 관객과 여성 관객이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여성 관객분들은 이런 미묘한 분위기를 금방 알아채시더라. 또 많이 공감하시는 것 같고. 모성애 메타포에 대해 뭉클했다고 많이 얘기하시는데 남자 관객분들은 재혁(김남길 분)의 장면에서 큰 공감하더라.

이번 작품에서도 고생이 많았다. 박정우 감독 작품이라면 당연히 출연하는 분위기던데, 다음 작품이 재난 영화여도 출연할 생각인가?
- 어휴. 재난영화는…. 하하하. 감독님이 섬세한 면이 많아서 여성 영화를 찍으셔도 정말 잘 찍으실 것 같은데. 여성 영화를 하셨으면 좋겠다. 그럼 물론! 출연하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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