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 직후 그는 질의응답은 받지 않은 채 국회를 떠났다. 카메라 기자와 펜 기자들이 한꺼번에 따라붙으면서, 좁은 복도가 삽시간에 사람들로 가득 차며 움직이기도 힘든 지경이 됐다. 현장에서는 '한 말씀 해주십시오'라는 외침과 고성 등이 간간이 섞여나왔다. 그가 귀국해 처음 공항에 모습을 드러낼 때처럼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반 전 총장은 사실상 '대선주자'로서 보낸 3주를 마쳤다.
그가 이후 기자들과 한 인터뷰 등을 정리해보면,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을 많이 느낀 듯 하다. 정치를 교체하겠다던 반 전 총장의 포부는 그의 표현대로 정말 '순수'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귀국 후 보여준 행보, 측근에 모여드는 인사들을 보며 국민들은 구시대 정치의 '데자뷔'를 느꼈다.
이제 반 총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지지층이 어디로 갈 것이냐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험난했던 3주와 국민들의 냉담한 반응은 이번 대선 국면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포인트다. '정치교체'라는 그의 선언은 결국 불출마로 인해 공허한 외침이 됐다.
반 전 총장의 실패를 요약하는 한 단어는 전략 부재다.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대선주자들은 명확한 전략을 갖고 있느냐고 한다면 확신하기 어렵다. 각종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데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실제 선거에서 정책보다 이미지가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은만큼, 공약에 대해서는 관심도도 높지 않다.
정치교체는 이러한 인식들을 전반적으로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쉽지 않다. 특히 조기 대선이 거론되는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시대의 과제다. 이번 대선주자들이 반 전 총장의 사례를 유념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여, 같은 맥락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도 불편하다. 명확한 입장표명 없이 대선 판도를 계속 흔들고 있는 모습은, 권한대행으로서 국정의 공백을 메꿀 수장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지금,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노골적인 권력욕은 결코 환영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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