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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속옷 산업 개척자' 남상수 비비안 명예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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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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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온유 기자 = 남상수 남영비비안 명예회장이 9일 0시 22분 향년 92세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故) 남상수 회장은 남영비비안 창업주로 192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1957년 남영비비안을 설립해 여성 속옷 사업을 시작, 회사를 국내 대표 여성 속옷 전문 기업으로 키워냈다.

실제 비비안이 탄생하기 전인 1950년대 여성들은 고쟁이나 광목으로 된 속옷을 착용했었다. 이후 서양식 의복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좀 더 예쁜 맵시를 위해서는 그에 맞는 속옷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국내 여성 속옷 시장을 개척했다. 브래지어, 거들 등 현재와 같은 속옷을 소개함으로써 여성들의 의생활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또한 1954년 무역 회사인 남영산업을 세우고 우리나라 무역산업의 초석을 마련했다. ​미국·유럽·일본 등지에 속옷과 스타킹을 수출했으며, 일본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미국 시장을 공략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70년대에는 홍콩 스타킹시장의 30%를 점유했으며, 1980년대에는 미국에 수출하는 브래지어만 연간 800만장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주목하기 전인 1992년에 이미 중국에 속옷 생산 법인을 세우고 1989년부터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두 법인은 미국과 유럽·일본 등지에 수출하는 여성 속옷과 스타킹을 생산한다.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으로 24년간 재임했으며, 상공의 날 대통령 표창 및 금탑, 은탑, 동탑 산업 훈장, 수출의 날 산업 포장을 받은 바 있다.

1976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재단법인 연암(然菴)장학회를 만들고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는 등 장학 사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매년 2회씩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해 현재까지 학생 6000여명에게 약 48억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순 여사와 남석우 남영비비안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월 11일. 장지는 경기도 화성 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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