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제약업계 이익단체인 제약협회가 명칭 변경에 나선 것은 3번째다. 해방과 함께 세워진 조선약품공업협회(1945년 10월 26일)이 제약협회의 첫 이름이다. 이후 대한약품공업협회(1953년 3월 20일)에 이어 현재의 협회명(1988년 2월 26일)으로 이름을 바꿨다.
협회는 명칭 변경의 이유로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을 아우르고 있는 명실상부 제약산업 대표 단체로서의 위상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런 사실을 정부와 국민에게 알리고, 효과적으로 관련 업무를 수행하려면 명칭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산업 현장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제약협회에 따르면 이 협회 200개 회원사 중 50곳이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거나 만들고 있다. 국내 백신 1위 업체인 녹십자를 비롯해 유한양행, 한미약품 등이 제약협회 회원이다.
제약협회가 이름을 바꾸려면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두 곳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담은 협회의 정관 개정을 승인해야 한다.
이 가운데 식약처는 협회의 요구를 수용했다. 식약처는 지난 2월 제약협회에 한국제약바이오협회로 명칭을 변경하는 데 필요한 정관 개정을 승인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반면 복지부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제약협회는 지난달 22일 열린 정기총회에서도 명칭을 바꾸는 정관 개정에 실패했다.
제약협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곳은 한국바이오협회와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다. 특히 바이오협회의 입장이 강경하다. 바이오협회는 1982년 설립된 바이오 단체다.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을 모태로 한국생물산업협회와 한국바이오벤처협회를 통합해 현재의 바이오협회가 만들어졌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바이오협회는 산·학·연·정을 아우르는 바이오산업 대표 단체임을 강조하며, 제약협회의 명칭 변경에 제동을 걸고 있다. 선진국에선 제약·바이오 유관단체가 각각의 명칭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반대 이유 중 하나다.
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제약 이익단체는 미국제약협회(PHRMA), 일본은 일본제약공업협회(JPMA), 유럽연합(EU)은 유럽제약산업연협회(EFPIA)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반면 바이오 이익단체는 각각 미국바이오협회(Biotechnology Industry Organization·BIO), 일본바이오협회(JBA), 유럽바이오산업연합회(EuropaBio) 등을 사용하고 있다.
제약협회 정기총회가 열렸던 일주일 전에는 별도의 성명까지 내놨다. 제약협회가 명칭 변경 승인에 미온적인 복지부와 물밑 접촉하며, 설득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실제 이행명 제약협회 이사장은 이날 정기총회에서 "명칭 변경에 대한 정관 개정을 식약처는 승인했다"고 전한 뒤 "아직 복지부 승인은 받지 못했지만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자신했다. 네이버 등 일부 포털사이트에서 제약협회를 검색하면 '한국제약바이오협회'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바이오협회는 이런 행보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서정선 바이오협회장은 "명칭을 통해 특정 산업영역을 점유하려는 시도는 시대적 흐름에 맞는 않는 방식"이라며 "두 협회가 명칭이 아닌 기능적인 차별화를 통해 상호보완적인 협력모델을 제시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두 단체가 이름을 놓고 으르렁 거리는 것은 '바이오'에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바이오산업은 장기침체에 빠진 다른 산업과 달리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4년 3231억 달러 수준이던 세계 바이오 시장 규모는 2019년엔 4273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국내 시장도 두자릿수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정부, 전 세계 투자업체가 바이오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4차산업시대의 8대 유망직종 중 하나로 '바이오제약'을 꼽고 투자를 강화 중이다.
이익단체 명칭은 시대 흐름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다만 돈벌이를 이유로 이름을 바꾸거나,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고 다툼을 벌이는 듯한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두 단체의 합리적인 조율과 판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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