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
# 허베이성 창저우(滄州) 출신으로 베이징에서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90허우(1990년대 생) 청년인 류웨(劉悅)는 '슝안(雄安)신구' 소식이 나온 이튿날인 지난 2일 아침 바오딩시 3개 현(슝·안신·룽청)으로 향했다. 대박 투자의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관련 지역 부동산 매매가 모두 중단됐고 제한 대상이 아닌 매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60만 위안(약 1억원)을 들고 나선 그는 "지난달 30일에 도착했다면 1㎡당 6000위안에 100㎡ 규모 영구소유 주택을 구입할 수 있었는데 이틀 만에 이 돈으로는 30㎡ 크기의 화장실만 살 수 있게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매물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달려갔지만 거짓 정보였고, 중개업체가 권한 안신현에서 25㎞ 떨어진 바이거우진(白溝鎭)의 매물 두 곳은 이동하는 30분 사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최근 중국에서 가장 핫한 지역으로 떠오른 슝안신구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슝안신구와 관련된 부동산, 증시, 기업 관련 소식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슝안신구를 향한 뜨거운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신구가 아니다. 선전개발특구, 상하이 푸둥신구에 이어 국가 최고지도자가 주도해 추진하는 전국 단위의 국가급 신구다. 작은 어촌, 시골마을이 중국 개혁·개방 1번지, 중국 금융중심지로 부상한 것처럼 슝안신구도 중국의 새로운 성장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폭발하고 있다.
◆ 시진핑의 ‘천년대계’ 슝안신구
지난 1일 중국 국무원은 허베이성 바오딩시 3개 현을 묶어 슝안신구를 개발하며, 이는 선전경제특구와 상하이 푸둥신구에 이은 전국 단위의 국가급 신구라고 밝혔다. 국가급 신구는 국가 주도 경제개발 특구로, 슝안신구는 중국 내 19번째 국가급 신구다. 하지만 국가 최고지도자의 주도로 조성되는 전국 단위 신구로는 세 번째다.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1980년대에 지정한 선전경제특구,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1990년대에 개발을 확정한 상하이 푸둥신구에 이어 등장한 시진핑의 국가급 신구다. 국무원은 개발 계획을 공개하면서 "슝안신구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 내놓은 중대하고 역사적인 전략적 선택으로 국가의 천년대계이자 국가대사"라고 표현했다.
왜 천년대계일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통일 중국’ 천년 수도로 자리잡은 베이징의 심각한 교통체증, 대기오염, 높은 집값 등 도시병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내놓은 방안이 슝안신구 프로젝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과 수도권, 나아가 중국의 새로운 천 년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이다.
슝안신구는 단계적으로 개발될 예정으로 1단계 100㎢에서 2단계 200㎢, 3단계 2000㎢까지 확대해 선전경제특구(1991㎢)와 맞먹는 크기로 조성된다. 이는 홍콩의 2배이자 한국 서울의 3.5배에 달하는 규모로 상하이 푸둥신구(1210㎢)보다 크다. 베이징의 비수도 기능이 이전되며 이를 통해 인구 분산을 이끌고 수도권 전체를 업그레이드 한다는 계획이다. 징진지(베이징· 톈진·허베이)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혁신 발전을 이끄는 신(新)성장동력으로 키워낸다는 포부다.
시 주석은 앞서 2월 23일 안신현을 찾아 슝안신구의 7개 중대 임무를 부여했다. △친환경·스마트 신도시 건설 △우거진 녹음과 맑은 하늘, 깨끗한 물이 공존하는 생태도시 건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혁신·하이테크 도시 건설 △우수한 공공 인프라를 갖추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경영 모범도시 건설 △편리한 교통망을 갖춘 친환경 교통 도시 건설 △시장 중심 메커니즘과 정부 역할이 조화를 이루는 시장 도시 건설 △대외개방과 협력의 새로운 플랫폼을 갖춘 개방도시 건설이 그것이다.
슝안신구는 경제 발전도가 낮다. 지난해 3개 현의 지역총생산을 모두 합쳐도 200억 위안(약 3조3230억원) 수준이다. 베이징에서 고속철로 30~40분 거리에 위치한 미개발 지역으로, 슝안신구가 이끌어낼 변화가 기대된다. 막대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슝안신구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15년 뒤 슝안신구의 인구는 지난해의 110만명에서 540만명까지 늘고 누적 투자액은 2조 위안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속도가 빠를 경우 10년 내 인구 670만명, 누적 투자액은 2조4000억 위안(약 400조원) 육박도 가능하다고 봤다.
주요 국유기업도 발빠르게 사업부문 이전과 투자를 선언하고 있다. 지난 6일 중국선박중공업(CSIC)이 국유기업 중 최초로 일부 사업부문을 슝안신구에 이전하기로 한 후 9일 저녁(현지시간)까지 중국중철, 차이나유니콤, 동방항공, 시노펙, 페트로차이나, 시누크, 남방전력망, 중국광핵그룹, 중국국가전력망 등 31곳의 국유기업이 슝안신구 조성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 ‘랑팡공식’에서 ‘2 ·26 담화’까지, 10년 14개월의 여정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슝안신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 슝안신구의 기본 틀이 등장하기까지는 무려 10년하고도 1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2004년 처음 징진지 지역 협력과 베이징 비수도 기능 이전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10년의 탐색 과정 후 2014년에야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14개월의 논증작업 끝에 슝안신구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2004년 2월 12일 베이징 남부에 위치한 랑팡시에서 징진지 지역 대표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고 징진지 협력 강화와 난제 극복을 위한 ‘랑팡공식’에 합의했다. 이는 징진지 통합발전을 위한 협력의 물꼬를 처음 틔운 것으로, 베이징의 도시병과 징진지 공동발전을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강한 리더십이 없었고 3개 지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터닝포인트는 2014년 2월 26일에야 나타났다. 시 주석이 직접 좌담회를 주최해 추진상황을 전달받고 징진지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함께 관련 당국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이것이 바로 ‘2 ·26 담화’다.
이후 14개월 만인 2015년 4월 30일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징진지 발전을 위한 ‘징진지 협력발전 규획 요강’을 공개했다. 요강에는 ‘하나의 핵(一核; 베이징) – 두개의 도시(雙城; 베이징·톈진) –세 개의 축(三軸; 베이징-톈진, 베이징-바오딩-스자좡, 베이징-탕산-친황다오)- 4개의 구(四區; 동부연안발전구, 남부기능확대구, 서북부생태함양구, 중부핵심기능구)’의 징진지 도시권의 기본 틀이 제시됐다.
도시기능 이전과 관련된 항목도 다수 포함됐는데, 눈에 띄는 것은 '집중 이전'과 '분산 이전' 방식을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활용한다는 부분이다.
과거 ‘랑팡공식’ 초안 작업에 발개위 국토개발지역경제연구소 부소장 신분으로 참여했던 샤오진청(肖金成)은 “여기서 집중 이전이라는 것은 집중 이전 지역을 조성한다는 의미로 슝안신구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라며 “2·26담화 이후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슝안신구의 밑그림이 그려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작업은 순조로웠고 이에 따라 지난 1일 중국 당 중앙, 국무원이 ‘천년대계’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린 것이다.
◆ 슝안신구, 선전특구와 푸둥신구의 기적 이어갈까
중국은 슝안신구 계획 발표와 함께 선전에서 잔뼈가 굵은 쉬친(許勤) 선전시 당서기를 허베이성 부서기에 임명하고 허베이성 대리성장으로 내정했다. 이는 선전특구의 성공과 부작용 극복의 경험을 슝안신구에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슝안신구가 중국 개혁·개방 역사의 세 번째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중국 사회의 기대감도 커졌다. 중국 남부 해안의 작은 어촌이었던 선전은 단시간에 중국 4대 1선도시, 창업의 메카로 부상했고, 상하이의 시골 마을 푸둥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금융도시가 됐다. 이는 모두 예상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준의 놀라운 변화였다.
덩샤오핑의 주도로 선전특구가 등장하고 이후 선전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의 시작점이다. 이곳에서는 자유로운 창업이 가능했고 이에 도전정신을 가진 런정페이(화웨이), 마밍저(핑안보험) 등이 선전으로 찾아왔고 성공했다. 혁신과 도전, 개방의 열기 속에서 선전시 지역총생산은 1979년 1억7900만 위안에서 지난해 1조9500억 위안(약 324조원)으로 1만배가 됐다.
상하이 푸둥신구도 개혁·개방을 선도하며 초고속 성장과 중국의 변화에 힘을 보탰다. 1990년 해당 지역의 지역총생산은 60억2400만 위안에 불과했지만 최근 8732억 위안(약 145조822억원)으로 약 144배가 됐다. 여전히 상하이시는 물론 전국 성장률을 크게 웃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상하이시의 지난 5년간 평균 성장률은 7.5%로 푸둥신구는 이를 1.3%포인트가량 웃돌았다. 2013년 중국 최초의 자유무역구인 상하이 자유무역시범구가 들어서면서 대외개방 거점으로의 입지도 확실하게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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